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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람들에게 태양은 헬리오스 신이었어요.
매일 아침 하늘을 가로질러 마차를 모는 신, 경배해야 할 존재였죠.
그런데 한 철학자가 대뜸 "저건 그냥 벌겋게 달궈진 돌덩어리예요"라고 했어요.
그 사람이 아낙사고라스예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활동한 자연철학자로, 신화 대신 관찰로 세상을 이해하려 했어요.
그가 주장한 태양의 크기가 충격적이었어요. "펠로폰네소스 반도보다 크다"고 했거든요.
펠로폰네소스는 그리스 남부에 붙은 거대한 육지 덩어리예요.
오늘날 면적으로 따지면 경상도와 전라도를 합친 것보다 큰 땅이에요.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던 세계에서 가장 큰 땅 중 하나였죠.
그 땅보다 태양이 더 크다고? 당시 사람들한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어요.
하늘에 떠 있는 저 작은 원반이 어떻게 그 넓은 땅보다 크냐는 거죠.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틀리지 않았어요. 태양은 실제로 어마어마하게 크고, 다만 멀리 있을 뿐이에요.
그는 달에 대해서도 말했어요.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아요. 태양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거예요."
이 말 한마디로 월식의 원리를 처음으로 합리적으로 설명해냈어요. 달이 지구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면 반사할 빛이 없어진다고요.
오늘날 누군가가 공식 행사장에서 "국기에 새겨진 그 신성한 문양은 그냥 염료 묻은 천 조각이에요"라고 말하는 상황을 상상해보세요.
아낙사고라스의 발언은 그 정도 충격이었어요.
신으로 숭배하던 천체를 돌멩이로 끌어내린 거니까요.
그는 우주가 신의 변덕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지성이 돌리는 거대한 회전 운동이라고 했어요.
신화가 "제우스가 성이 나서 번개를 던졌다"고 설명할 때, 아낙사고라스는 "왜 번개가 치는지 물리적으로 따져봅시다"라고 했죠.
이건 당시로서는 완전히 다른 언어로 말하는 거였어요.
그의 설명은 이랬어요.
태초에 온 우주의 물질은 무한히 작은 씨앗들, 스페르마타로 뒤섞여 있었어요.
흙의 씨앗, 물의 씨앗, 불의 씨앗이 모두 뒤죽박죽 한 덩어리였죠.
그 뒤섞인 혼돈을 분리시킨 것이 누스(Nous)예요.
누스는 그리스어로 '지성' 또는 '정신'인데, 물질이 아니면서 물질을 움직이는 원리예요.
오늘날로 치면 하드웨어가 아닌 운영체제 같은 거예요.
온갖 부품이 뒤섞인 상자가 있고, 어디선가 운영체제가 작동하면서 부품들을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는 거죠.
부품 자체가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아낙사고라스에게 물질만으로는 우주를 설명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물질 바깥에 있는 무언가를 찾은 거예요.
훗날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낙사고라스를 이렇게 평가했어요.
"취해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깨어난 사람."
신화라는 안개 속에서 눈을 뜬 첫 번째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그가 추방된 진짜 이유는 태양 발언이 아니었어요. 친구를 잘못 둔 거였어요.
아낙사고라스는 페리클레스의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였어요.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황금기를 이끈 정치가로, 파르테논 신전을 세우고 민주정을 완성한 인물이에요.
페리클레스가 강력해질수록 그의 정적들도 거세졌어요.
하지만 페리클레스를 직접 공격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래서 그들은 눈을 돌렸어요.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로요.
기원전 432년경, 아테네 의회는 디오페이테스 법령을 통과시켰어요.
"천문학을 가르치는 자도 신성모독으로 처벌한다"는 내용이었어요.
표면상 종교 보호법이었지만, 실제 목표물은 명백했어요. 아낙사고라스였죠.
회사 임원을 끌어내리려고 그의 멘토부터 해고시키는 사내 정치극과 똑같은 구조예요.
아낙사고라스는 신성모독죄로 고발됐어요.
페리클레스가 간신히 사형을 막아냈지만, 대신 아테네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어요.
30년 가까이 살았던 도시에서 쫓겨난 거예요.
죄목은 태양을 돌이라 부른 것, 진짜 이유는 권력 싸움에 끼어든 것.
이 두 가지가 얼마나 다른지, 아낙사고라스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았을 거예요.
추방된 노철학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부탁은, 자기 동상도 무덤도 아닌 아이들의 휴일이었어요.
아낙사고라스는 소아시아의 람프사코스로 망명했어요.
오늘날 터키 서쪽 해안에 있는 도시로, 그는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냈어요.
람프사코스 시민들은 그를 존경했어요.
죽기 전, 시민들이 물었어요. "무엇을 원하세요? 어떻게 기려드릴까요?"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동상을 세워달라거나, 이름을 딴 광장을 만들어달라거나 하죠.
하지만 아낙사고라스의 대답은 달랐어요.
"내가 죽은 달의 그날을, 매년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날로 만들어주세요."
그게 전부였어요.
고대 철학자 전기 작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기록에 따르면, 실제로 그 관습이 수 세기 동안 람프사코스에서 지켜졌어요.
매년 그날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를 쉬었어요.
철학자의 이름을 몰라도, 그 휴일을 즐기는 아이들 덕분에 그는 계속 살아 있었던 거예요.
신을 부정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하고, 정치 싸움의 희생양이 됐던 사람이 마지막에 원한 건 자기를 위한 무언가가 아니었어요.
그냥 아이들의 하루였어요.
태양을 돌이라 부른 죄로 쫓겨난 철학자의 마지막 소원이 그거였다는 게, 뭔가를 말해주는 것 같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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