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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몽테스키외의 세례식엔 비단옷의 귀족 대신 누더기 거지가 대부로 서 있었어요.
1689년, 프랑스 보르도 근교의 라 브레드 성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이 태어났어요.
본명은 샤를 루이 드 스공다, 훗날 우리가 몽테스키외라고 부르게 될 그 사람이에요.
그런데 세례식에서 아버지가 한 일이 당시로선 충격적이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재벌가 아이 돌잔치에 아버지가 일부러 노숙인을 주빈으로 초대한 거예요.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이 아이가 평생, 가난한 자가 자기 형제임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귀족 후계자의 첫 종교 의식부터 신분 질서가 의도적으로 흔들렸어요.
그 아이는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첫날부터 배웠어요.
1721년 파리는 한 권의 책으로 들끓었지만, 작가 이름은 아무도 몰랐어요.
책 제목은 '페르시아인의 편지'예요.
두 명의 페르시아 여행자가 파리에 도착해서 유럽 사회를 편지로 주고받으며 조롱하는 내용이에요.
"프랑스 국왕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의 말을 그냥 믿는지 신기하다"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외부인의 눈으로 비틀었어요.
책은 출간 즉시 파리 살롱가, 즉 귀족과 지식인들이 모이는 응접실 모임의 최대 화제작이 됐어요.
1년 만에 10쇄를 찍었어요.
그런데 이 책의 작가가 사실은 보르도 법원의 판사였어요.
당시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어야 할 직업인 판사가 가장 신랄한 사회 풍자를 쓴 거예요.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가 익명 계정으로 사법부를 조롱하는 베스트셀러를 냈는데, 그 동료들이 그 책을 돌려 읽는 상황이에요.
몽테스키외는 가문이 대대로 지켜온 법관 자리를 시장에 내놨어요.
1726년, 그는 프레지당 아 모르티에라는 자리를 팔았어요.
보르도 의회의 종신직 수석 법관으로, 평생 고용이 보장된 최고 명예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정년이 보장된 대법관 자리를 스스로 포기한 거예요.
그 돈으로 그는 1728년, 3년짜리 유럽 여행을 떠났어요.
빈, 베네치아, 로마를 거쳐 마지막엔 영국에서 18개월을 머물렀어요.
그는 영국 의회를 직접 방청하고 재판소를 돌아다니며 "여기선 어떻게 권력이 작동하는가"를 눈으로 확인했어요.
여기서 아이러니가 하나 있어요.
훗날 그가 "권력은 권력으로 견제해야 한다"고 쓰게 된 영감을, 자기 권력을 스스로 팔아버린 후에야 얻었다는 거예요.
내려놓은 사람만이 볼 수 있는 것이 있었던 거예요.
교황청이 1751년 금서로 지정한 그 책을, 36년 뒤 미국 건국자들은 회의 탁자에 펼쳐놓고 헌법을 썼어요.
책 제목은 '법의 정신'이에요.
몽테스키외가 20년에 걸쳐 쓴 책으로, 어떤 법이 어떤 조건에서 왜 작동하는지를 분석한 방대한 작업이에요.
그 무렵 그는 거의 시력을 잃은 상태였어요. 20년의 집필이 그의 눈을 빼앗아 간 거예요.
책은 18개월 만에 22쇄를 찍었어요.
하지만 교황청은 이 책을 금서 목록에 올렸어요.
권력이 서로를 견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 교회와 왕권의 논리를 정면으로 흔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정확히 36년 뒤인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미국 헌법을 기초하던 매디슨과 해밀턴이 이 책에서 삼권분립 개념을 가져왔어요.
삼권분립이란 한 사람이나 기관이 모든 권력을 쥐지 못하도록, 법을 만드는 권한(입법), 법을 집행하는 권한(행정), 법을 해석하는 권한(사법) 셋으로 나누는 제도예요.
그들이 남긴 '연방주의자 논고'에서 몽테스키외는 가장 많이 인용된 사상가가 됐어요.
교회가 불태우려 했던 한 권의 책이, 한 세대 만에 새 공화국의 설계도가 됐어요.
그리고 그 설계도 위에 세워진 나라의 헌법이 지금도 전 세계 민주주의의 기준점으로 남아 있어요.
누더기 대부 앞에 세례를 받은 아이가 결국 이 모든 걸 설계했다는 사실이,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딱 맞아 떨어지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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