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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공자 사상을 가장 충실히 이어받았다고 평가받는 인물은 정작 공자를 본 기억이 없는 손자였어요.
자사(子思), 본명 공급(孔伋)은 기원전 483년경에 태어났어요.
공자가 세상을 떠난 건 기원전 479년, 자사가 고작 네 살 무렵이었을 때예요.
기억에 남을 나이도 아니었죠.
게다가 자사의 아버지 공리(孔鯉)는 공자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그러니까 자사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없는 채로 자라야 했던 거예요.
공자의 직접 제자들이 이 고아 같은 손자를 거두었어요.
결국 자사는 증자(曾子), 공자가 직접 가르친 제자에게서 유학을 배웠어요.
증자는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돌아본다"는 말로 유명한 사람으로, 공자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제자로 꼽혀요.
자사는 할아버지를 책과 사람을 통해서만 알아갔어요.
유명한 조부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손자가, 그 조부의 사상을 가장 깊이 이해한 인물로 역사에 남았다는 건 꽤 아이러니한 일이에요.

자사는 왕의 곡식을 받았지만 머리를 숙이지는 않았어요.
노나라 목공(魯穆公), 자사가 살던 나라의 왕이 가난하게 살던 자사에게 여러 차례 곡식과 옷감을 보냈어요.
자사는 받았어요.
하지만 절은 하지 않았죠.
오늘날로 치면, 부유한 친구가 매달 생활비를 보내주는데 받자니 갑을 관계가 되고 거절하자니 굶을 상황이에요.
자사는 받되, 감사 인사는 끝까지 하지 않은 셈이었어요.
왕의 사신이 이유를 묻자 자사가 말했어요.
"왕이 나를 친구로 대한다면, 친구의 선물에 절하지 않아요.
스승으로 대한다면, 스승은 앉아서 받지 절하지 않거든요."
이 말은 맹자가 쓴 책의 만장하편(萬章下篇, 왕과 선비의 관계를 다룬 챕터)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져요.
받음으로써 상대의 호의는 인정했지만, 절하지 않음으로써 종속은 거부한 거예요.
굶주릴 만큼 가난했으면서도 머리는 끝내 숙이지 않았다는 게, 자사라는 인물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자사가 쓴 중용은, 공자가 평생 입에 담지 않았던 것으로 시작해요. 하늘이에요.
중용(中庸)은 유교의 핵심 경전인 사서(四書, 논어·맹자·대학·중용) 중 하나예요.
사서는 유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했던 네 권의 책이에요.
그 중용의 첫 문장이 이래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의 명을 본성이라 한다."
하늘이 인간의 본성을 만들었다는 형이상학적 선언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논어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자불어 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공자는 신비롭거나 초자연적인 주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공자는 실용적인 사람이었어요.
어떻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잘 살 것인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것인가, 현실 문제에만 집중했어요.
"하늘이 어떻다"는 말은 평생 피했죠.
그런데 자사는 그 할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자마자 첫 줄부터 형이상학으로 간 거예요.
이건 배신이 아니에요.
공자 사상에 아직 없던 질문, "왜 사람은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답하려 했던 거예요.
공자가 "어떻게"를 말했다면, 자사는 "왜"를 물은 사람이에요.

자사가 없었다면 맹자도 없었어요.
자사가 세상을 떠난 지 약 30년 뒤, 맹자(孟子)가 태어났어요.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로 유명한 철학자예요.
그 사상의 씨앗은 자사의 학파에서 왔어요.
역사 기록은 맹자가 "자사의 제자들에게서 배웠다(子思之徒)"고 명시해요.
유교의 도통(道統)은 사상이 누구에서 누구로 전수됐는지를 따지는 계보예요.
공자에서 증자, 증자에서 자사, 자사의 제자들에서 맹자로 이어지는 흐름이에요.
자사가 이 고리를 이어주지 않았다면 맹자도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맹자가 없었다면, 1500년 뒤 송나라에서 꽃핀 성리학(性理學)도 지금과는 달랐을 거예요.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이치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상인데, 그 출발점이 바로 자사의 중용 첫 문장이에요.
자사는 이름을 떨친 창업자도 아니고 화려한 후계자도 아니에요.
가족 기업으로 치면, 창업자(공자)와 크게 성공한 3세대(맹자) 사이에서 조용히 가업을 지킨 2세대예요.
하지만 이 2세대가 없었다면 화려한 3세대도 없었을 거예요.
할아버지를 본 기억도 없고, 왕 앞에서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던 그 손자는 동양 사상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다리 하나를 놓고 갔어요.
그 다리 위로 맹자가 걸어갔고, 성리학이 지나갔어요.
자사의 이름이 자꾸 흐릿해 보이는 건, 그가 뒤에 가려져 있어서가 아니라 다리가 되어버린 사람은 원래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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