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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알 파라비는 같은 자리에서 청중을 세 번 다른 감정으로 데려갔어요.
처음엔 웃겼고, 다음엔 울렸고, 마지막엔 잠재웠어요.
942년 무렵, 시리아 알레포의 왕궁이었어요.
함단 왕조의 군주 사이프 알 다울라, 당시 중동 최고 권력자 중 한 명이 모인 자리에서 알 파라비가 우드를 꺼내 들었어요.
우드는 아랍의 현악기로, 오늘날 기타의 먼 조상뻘 되는 류트예요.
첫 선율을 뜯자 귀족들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어요.
곡이 바뀌자 같은 사람들이 흐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선율이 이어지자 왕의 신하들이 하나둘 잠들어버렸어요.
우리는 알 파라비를 '철학자'로 기억해요.
하지만 그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는 감정을 악기처럼 조율하는 음악의 마법사였어요.
그는 『키타브 알 무시카 알 카비르』, 우리말로 '음악 대전'이라고 불리는 음악이론서도 남겼는데, 이 책은 중세 음악이론의 기초 교재가 됐어요.
제2의 스승이라는 칭호는 천재의 직관이 아니라, 같은 책을 200번 다시 읽는 노동에서 왔어요.
알 파라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에 관하여』를 200번 읽었다고 직접 기록을 남겼어요.
이 책은 영혼, 감각, 사고를 분석한 그리스 철학서로, 당시 이슬람 학자들에게 일종의 최종 교과서 같은 존재였어요.
그는 같은 저자의 『자연학』도 40번 읽었어요.
한 권을 200번 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안 오면, 이렇게 생각해보면 돼요.
대학 입시 수학 기본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200번 다시 풀어내는 거예요.
다음 줄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외워질 때까지요.
그렇게 해서 그는 '무알림 알 사니', 즉 '제2의 스승'이라는 칭호를 얻었어요.
첫 번째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였고, 그 바로 다음 자리를 알 파라비가 차지했다는 뜻이에요.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이 칭호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학자 공동체가 공인한 지위였어요.
사이프 알 다울라가 내민 봉록 봉투를 알 파라비는 거의 그대로 돌려보냈어요.
그가 받겠다고 한 건 하루 4디르함뿐이었어요.
4디르함은 당시 평민 노동자 하루 일당 수준이에요.
군주는 비단과 황금을 얹어 제시했어요.
그런데 알 파라비의 답은 짧았어요.
"그 정도면 내가 필요한 것을 사기에 충분해요."
오늘날로 치면 글로벌 빅테크 회사가 억대 연봉 패키지를 제시했는데, "편의점 알바비만 주세요"라고 답한 셈이에요.
그는 평생 거친 수피 복장만 입었어요.
수피란 이슬람 신비주의 수행자들이 입던 거친 양모 옷으로, 세속의 것을 내려놓겠다는 의지를 몸으로 드러내는 방식이에요.
자기 집도 없었어요.
사적 재산도 쌓지 않았어요.
당대 가장 뛰어난 지성이 가장 가난한 학생의 살림을 일부러 골랐어요.
이상도시를 설계한 알 파라비는, 정작 자기 도시 한 채 없이 길에서 죽었어요.
그는 『알 마디나 알 파딜라』, 우리말로 '이상도시론'이라 부르는 책에서 완벽한 사회의 청사진을 그렸어요.
군주와 시민과 법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 플라톤이 『국가』에서 꿈꿨던 것을 이슬람 철학의 언어로 재설계한 작업이었어요.
플라톤의 『국가』는 기원전 4세기 그리스 철학자가 완벽한 정치 공동체를 설계한 책이에요.
하지만 그 본인은 평생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았어요.
바그다드에서 알레포로, 알레포에서 다마스쿠스로, 결코 한 곳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어요.
아니, 내리지 못했어요.
950년 무렵, 80세가 다 된 나이에 다마스쿠스 인근 길에서 도적을 만났다는 기록이 전해져요.
완벽한 도시를 종이 위에 설계한 사람의 마지막 장면이에요.
'완벽한 가정 만드는 법'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가 평생 셋방을 전전하다 귀갓길에 강도를 만난 것과 같아요.
그 책의 내용이 틀렸던 게 아닐 수 있어요.
다만 이상을 그리는 손과 이상 안에서 사는 삶은, 같은 사람에게도 별개의 문제였던 거겠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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