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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슬람 세계 최고의 신학자는 어느 날 자기 강단 위에서 입을 떼지 못했어요.
알 가잘리는 1095년 바그다드 니자미야 학원의 학장이었어요.
니자미야 학원은 당시 이슬람 세계 최고 권위의 국립 신학교예요.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 총장 자리와 대법관 권위를 합쳐놓은 수준이에요.
그런데 그 강단 위에서 강의를 시작하려는 순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어요.
의사들이 달려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어요.
신체 어디에도 이상이 없었으니까요.
평생 노력해서 들어간 회사 임원실에서 첫 발표 도중 목소리가 안 나와 마이크를 내려놓고 그대로 사표를 쓰고 사라지는 상황과 같아요.
그것도 수백 명의 학생이 지켜보는 앞에서요.
결국 알 가잘리는 6개월 만에 직위도, 재산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바그다드를 떠났어요.

11년 동안 이슬람 세계의 최고 신학자가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몰랐어요.
알 가잘리는 바그다드를 떠나 다마스쿠스, 예루살렘, 메카, 메디나를 떠돌았어요.
그가 입은 건 거친 양모 옷이었어요.
이건 수피즘 수도자들이 걸치는 옷이에요. 수피즘은 이슬람 안의 신비주의 흐름으로, 화려한 학문 대신 가난하게 살며 몸소 신을 경험하는 삶을 추구해요.
그는 나중에 스스로 기록을 남겼어요.
다마스쿠스 우마이야 모스크 한구석 다락방에서 몇 년을 혼자 보냈다고요.
칼리프, 즉 이슬람 세계 최고 통치자가 직접 그를 학장으로 임명했던 사람이, 모스크 청소부와 구분도 안 되는 차림으로 살았던 거예요.
대학 총장이 어느 날 사라져 11년 뒤 시골 절 앞마당에서 빗자루를 들고 발견되는 상황과 같아요.
하지만 그건 실패가 아니었어요.
그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어요.

불이 솜을 태우는 게 아니에요. 알 가잘리는 그렇게 주장했어요.
방황하던 그 시절, 알 가잘리는 책을 썼어요.
『철학자들의 모순』이에요.
당시 이슬람 지식인들이 열광하던 그리스 철학, 특히 이븐 시나의 논리 체계를 정면으로 반박한 책이에요.
이븐 시나는 페르시아 출신 철학자로, 서양에서는 '아비센나'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이슬람 세계에 가장 날카롭게 계승한 인물이에요.
알 가잘리는 그 철학의 핵심 결론 20가지를 하나씩 뜯어냈어요.
가장 유명한 건 인과율 부정이었어요.
불이 솜을 태우는 게 아니라 신이 솜을 태운다는 거예요.
우리는 '불이 솜 옆에 있으면 탄다'고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알 가잘리는 그 사이에 진짜 필연적 연결은 없다고 봤어요.
그런데 이 주장이 700년 뒤 어디선가 다시 등장해요.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18세기에 "원인과 결과는 우리가 만든 습관적 착각"이라고 썼어요.
11세기 바그다드의 은둔 학자가, 18세기 에든버러의 철학자보다 먼저 거의 같은 결론에 도달했던 거예요.

알 가잘리는 이슬람 세계 최초의 자서전 작가였어요.
만년의 그는 『오류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책을 썼어요.
강단에서 무너진 순간, 11년의 방황, 다시 신앙을 찾은 과정이 1인칭으로 담긴 책이에요.
회사를 그만둔 임원이 이력서 대신 "나는 왜 무너졌는가"를 책 한 권 분량으로 직접 쓴 셈이에요.
서양에서 자서전 장르의 시작으로 거론되는 루소의 『고백록』은 1782년에 나왔어요.
알 가잘리의 책은 그보다 약 680년 전이에요.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이후 700년 가까이 끊겼던 자기 고백의 계보를, 이슬람 신학자가 이어받은 거예요.
그가 기록한 건 눈부신 성공이 아니에요.
지식이 가장 많은 사람이 정작 자기 삶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고백이에요.
그 기록이 약 1000년을 건너와 지금 읽히고 있어요.
그가 강단에서 말을 잃은 그날, 그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막 시작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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