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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그 사람은, 본명조차 자기 이름이 아니에요.
우리가 아는 볼테르는 필명이에요.
본명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18세기 파리 귀족 집안의 아들이었어요.
1717년, 젊은 아루에는 당시 프랑스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섭정 오를레앙 공작을 시로 조롱했어요.
섭정이란 왕이 아직 어려서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에요.
결과는 즉각적이었어요.
그는 바스티유 감옥에 11개월간 갇혔어요.
바스티유는 단순한 감옥이 아니에요.
파리 한복판에 있던 정치범 수용소로, 권력자를 건드린 사람들이 재판도 없이 갇히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감옥에서 나온 아루에는 무너지기는커녕, 비극 「오이디푸스」를 들고 나타났어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비운의 왕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을 발표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볼테르'라는 이름을 썼어요.
왜 이름을 바꿨는지는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감옥에서 한 번 죽고 다시 태어난 사람이, 이름부터 새로 골랐어요.
'볼테르'라는 이름 자체가 저항의 시작이었어요.

계몽주의의 아버지를 평생 자유롭게 만든 건 사상이 아니라 복권이었어요.
1729년, 볼테르는 샤를 마리 드 라 콩다민이라는 수학자를 만났어요.
콩다민은 나중에 아마존 강의 길이를 직접 측량한 원정대를 이끈 과학자예요.
그가 프랑스 정부가 운영하는 채권 복권에서 치명적인 허점을 발견해 뒀어요.
복권 구조가 이상했어요.
당첨금 총액이 복권 판매 총액보다 크게 설계돼 있었어요.
전체 복권을 다 사면 반드시 이기는 시스템이었던 거예요.
두 사람은 투자자를 모아 매달 거의 모든 복권 표를 조직적으로 사재기했어요.
그리고 매달 당첨금을 챙겼어요.
정부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복권을 폐지했지만, 이미 볼테르에게는 막대한 돈이 쌓여 있었어요.
친구가 "이 앱 결제 시스템에 허점이 있어, 같이 털자"고 제안한 상황인데, 그게 합법이었던 거예요.
법원도 불법이 아니라고 봤어요.
그래서 돈은 고스란히 볼테르의 것이 됐어요.
이 돈이 볼테르의 진짜 자유를 만들었어요.
18세기 작가들은 대부분 귀족의 후원을 받아야 했어요.
후원자의 취향에 맞춰 쓰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때로는 침묵해야 했어요.
하지만 볼테르는 복권 덕분에 그 줄을 끊었어요.
계몽주의의 자유는 철학에서 나온 게 아니었어요.
산수에서 나왔어요.

볼테르가 평생 가장 자랑한 승리는 자기 책이 아니라, 죽은 사람의 이름을 되찾은 일이었어요.
1762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장 칼라스라는 개신교 상인이 처형됐어요.
죄목은 아들을 살해했다는 것이었는데, 아들은 실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였어요.
그런데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이 강한 툴루즈에서, 개신교도라는 이유 하나로 칼라스는 범인이 됐어요.
처형 방식은 거열형이었어요.
수레바퀴에 팔다리를 묶고 뼈를 부러뜨리는 잔혹한 형벌이에요.
칼라스는 그 위에서도 끝까지 "나는 결백하다"고 외쳤어요.
볼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직접 조사에 나섰어요.
그리고 3년 동안 「관용론」을 출간하고, 유럽 전역의 지식인과 귀족에게 청원 편지를 보냈어요.
관용론은 종교가 달라도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내용의 책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억울하게 매도당한 누군가를 위해 유명인이 SNS와 미디어를 총동원해 여론을 뒤집는 상황이에요.
1765년, 결국 법원은 칼라스에게 무죄를 선고했어요.
죽은 지 3년 만의 복권이었어요.
볼테르는 이 사건 이전에도 탁월한 풍자가였어요.
하지만 칼라스 사건 이후 그는 달라졌어요.
글로 권력을 비꼬는 사람에서, 죽은 사람의 명예를 실제로 되돌린 사람이 됐어요.

볼테르의 가장 유명한 문장은 볼테르가 한 번도 말한 적 없는 문장이에요.
"당신의 의견에는 반대하지만, 그것을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 문장이에요.
그런데 이건 볼테르의 말이 아니에요.
1906년, 영국 작가 이블린 베아트리체 홀이 볼테르 전기를 쓰면서 그의 태도를 자기 말로 요약했어요.
"볼테르라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을 정리한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후대 독자들이 인용 부호를 붙이면서 볼테르의 말로 굳어졌어요.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보이는 명언을 검색해 봤더니 실제로는 그 사람이 한 말이 아니었던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잖아요.
볼테르의 명언이 딱 그 케이스예요.
그것도 무려 100년 넘게 아무도 몰랐어요.
더 아이러니한 건 그의 죽음이에요.
1778년 볼테르가 세상을 떴을 때, 가톨릭 교회는 매장을 거부했어요.
평생 교회 권력을 비판한 대가였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시신을 마차에 싣고, 살아있는 척 앉혀 파리 밖으로 옮겼어요.
그리고 시골 수도원에 몰래 묻었어요.
자유 언론의 상징이 된 인물인데, 그 시신은 밀수품처럼 이동해야 했어요.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그 문장은 위작이었고, 그 주인공의 시신은 합법적으로 묻히지도 못했어요.
볼테르라면 이걸 어떻게 풍자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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