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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가르친 철학자가, 직업으로는 매일 사람의 몸에 칼을 댔어요.
섹스투스 엠피리쿠스는 서기 200년경 활동한 의사이자 철학자였어요.
이름의 '엠피리쿠스'는 직업을 그대로 나타내요.
당시 엠피리쿠스 학파라는 의학 유파에 속했는데, 이 학파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의사들이에요. "교과서 이론은 잠깐 내려놓고, 지금 내 앞 환자가 뭐라고 하는지부터 들어보자."
그런데 동시에 그는 피론주의 철학자였어요.
피론주의란 "어떤 것도 확실하다고 단정 짓지 말고, 판단을 유보하면 마음의 평정이 온다"는 사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확증편향 조심해, 우리가 아는 건 생각보다 훨씬 적어"를 2000년 전에 먼저 외친 거예요.
그래서 이런 장면이 벌어졌어요.
아침에 강의실에서 "인간은 어떤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가르친 사람이, 오후에 진료실에서 "오늘 이 약 드시고 이틀 후에 오세요"라고 처방전을 써줘야 했어요.
AI 진단을 절대 믿지 말라고 강연하면서 자기는 매일 그 AI로 환자를 보는 의사와 정확히 같은 처지였어요.
하지만 섹스투스는 이 모순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의 논리는 이랬어요. "확실하지 않아도 행동은 해야 한다. 단지 그게 절대적 진리라고 착각하지 말 것."
그에게 처방전은 진리가 아니라 지금 이 환자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뿐이에요.

1562년 어느 날, 죽은 지 1300년 된 한 그리스 의사의 책이 유럽 지식인들의 머리를 한꺼번에 흔들었어요.
섹스투스의 대표작 「피론주의 개요」는 회의주의 철학의 입문서예요.
쉽게 말해 "우리가 확실하다고 믿는 것들을 하나씩 뒤집어보는 책"이에요.
그런데 이 책은 그가 죽은 뒤 거의 1300년 동안 아무도 진지하게 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1562년, 프랑스 학자 앙리 에티엔이 이 책을 라틴어로 번역해 출간했어요.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의 혼란 한가운데 있었어요.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우리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싸우던 그 시점에, 갑자기 "애초에 누군가가 확실히 옳다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어?"라고 묻는 책이 등장한 거예요.
헌책방 구석에 먼지 쌓여 있던 책 한 권이 갑자기 시대의 폭탄이 된 셈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섬뜩한 반전이 있어요.
섹스투스는 "어떤 사상도 영원히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가르쳤고, 그의 사상은 정확히 1300년 동안 잊혔어요.
그를 가장 잔인하게 시험한 건 적대자의 공격이 아니라, 아무도 읽지 않는 도서관 선반이었던 거예요.

몽테뉴는 매일 천장을 올려다봤고, 그 천장에는 1300년 전 죽은 그리스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어요.
몽테뉴(1533-1592)는 프랑스의 사상가예요.
「수상록」이라는 책으로 유명한데, 쉽게 말하면 "나는 오늘 이런 걸 생각했는데 여러분은 어때요?"를 수백 편 쓴 책이에요.
르네상스 시대 지식인 중에서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솔직하게 풀어낸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몽테뉴에게는 특이한 습관이 있었어요.
자기 성의 탑 꼭대기에 서재를 만들고, 천장 들보에 57개의 그리스·라틴 격언을 직접 새겼어요.
그중 상당수가 섹스투스의 「피론주의 개요」에서 직접 가져온 문장이었어요.
이게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는 그의 평생 좌우명에서 알 수 있어요.
"Que sais-je?" 프랑스어로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뜻이에요.
결국 그건 섹스투스가 1300년 전에 던진 것과 똑같은 질문이었어요.
누군가의 책 한 문장이 너무 좋아서 집 천장에 평생 새겨두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어떤 영향인지는 더 설명이 필요 없잖아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 아니라, 죽은 지 1500년 된 한 회의주의자에 대한 반격이었어요.
데카르트(1596-1650)가 활동하던 17세기 유럽은 섹스투스 열풍이 한창이었어요.
「피론주의 개요」가 번역된 뒤 수십 년이 지나면서, "어차피 아무것도 확실히 알 수 없잖아"라는 분위기가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면 과학도, 수학도, 신도 다 무의미한 건가 하는 혼란이었어요.
데카르트는 여기에 정면으로 맞섰어요.
그의 「성찰」(1641)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요. "좋아, 섹스투스 말대로 모든 걸 의심해 보자. 내 눈이 거짓말할 수도 있고, 내가 꿈꾸는 걸 수도 있고, 악마가 나를 속이는 걸 수도 있어. 근데 그렇게 의심하는 '나'는 어떻게 의심하지?"
그리고 거기서 코기토가 나왔어요.
코기토, 즉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은 섹스투스의 의심을 끝까지 따라가다가 의심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지점을 발견한 거예요.
의심하는 행위 자체가 이미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니까요.
결국 근대 철학의 출발점으로 불리는 이 한 문장은, 인터넷에서 본 게시글에 반박하려다 자기 인생작을 써버린 것과 같은 구조예요.
어쩌면 서양 철학의 새벽은 누군가의 천재적 영감이 아니라, 1300년간 도서관 선반에서 먼지 털기를 기다리던 책 한 권에서 시작된 거일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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