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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포르피리오스가 30세에 자기 손으로 죽었다면, 우리는 플로티노스라는 이름조차 몰랐을 거예요.
포르피리오스는 원래 이름이 말쿠스였어요.
페니키아 티레, 지금의 레바논 남쪽 해안에서 태어난 이 청년은 263년 무렵 로마로 건너가 플로티노스의 제자가 됐어요.
플로티노스는 당시 로마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그의 사상이 신플라톤주의예요.
신플라톤주의는 이런 주장이에요.
이 세계는 진짜 실재의 그림자일 뿐이고, 저 너머에 완전한 원본이 있다는 거예요.
오늘날로 치면 "현실은 시뮬레이션이고 원본은 따로 있다"는 생각과 구조가 비슷해요.
그런데 입문한 지 5년쯤 지났을 무렵, 포르피리오스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어요.
스승 플로티노스가 이를 알아채고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겪는 건 철학에서 오는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야."
결국 플로티노스는 그를 시칠리아 섬으로 보내 요양시켰어요.
오늘날로 치면 번아웃으로 무너진 박사 과정 학생을 지도교수가 강제로 휴학시켜 시골에 보낸 상황이에요.
그 학생이 훗날 스승의 전집을 편집해 스승을 역사에 남기게 되는 거죠.

플로티노스가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가 된 건 그의 글 때문이 아니라, 그 글을 30년간 정리한 한 명의 제자 때문이었어요.
270년 플로티노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건 흩어진 원고 54편이 전부였어요.
그는 평생 자기 글을 다시 읽어 정리하지 않았어요.
말년에는 시력이 나빠 자기 글을 다시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포르피리오스는 30년에 걸쳐 그 54편을 6묶음으로 나누고 각 묶음을 9편씩 배열했어요.
이 책이 「엔네아데스」예요.
그리스어로 '아홉 편'이라는 뜻이에요.
결국 우리가 플로티노스의 이름을 아는 건 전적으로 포르피리오스의 30년짜리 편집 작업 덕분이에요.
죽은 멘토의 메모 뭉치를 제자가 책으로 묶어낸 거예요.
그리고 그 제자의 다음 작업이 바로 기독교 공격이었어요.

포르피리오스의 책 15권은 너무 정확해서 불태워졌어요.
270년 무렵 그는 「기독교인을 반박함」 15권을 썼어요.
단순한 비방이 아니었어요.
성경 본문을 한 줄씩 분석해 논리적 모순을 찾아내는 학술적 비판이었어요.
그가 지적한 것 중 대표적인 게 다니엘서 문제예요.
다니엘서는 구약성경의 한 권으로, 수백 년 전의 예언이 담겼다고 주장하는 책이에요.
포르피리오스는 그게 예언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이미 벌어진 뒤에 쓰인 위서라고 분석했는데, 현대 성서학자들이 약 1500년 뒤에 내린 결론과 거의 같아요.
하지만 448년, 동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이 책의 모든 사본을 불태우라는 칙령을 내렸어요.
가장 날카로운 비판이었기에 가장 철저하게 파괴됐어요.
지금 우리에게 남은 건, 다른 저자들이 포르피리오스를 반박하려고 직접 인용한 단편뿐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어떤 조직을 너무 정확하게 분석한 책을 그 조직이 사들여 전부 폐기한 거예요.
그 내용이 어땠는지는, 그 조직이 반박하려고 쓴 문서들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고요.

포르피리오스의 한 책은 기독교가 불태웠고,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은 기독교가 1000년간 베껴 썼어요.
비슷한 시기에 그는 다른 책 한 권도 썼어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을 처음 읽는 학생을 위한 입문서예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세상 모든 것을 분류하고 정의하는 방법을 체계화한 사람이에요.
이 입문서의 제목이 「이사고게」예요.
그리스어로 '입문'이라는 뜻이에요.
처음에는 조그만 안내서였는데, 약 240년 뒤 로마의 철학자 보에티우스가 이 책을 라틴어로 번역했어요.
라틴어는 당시 유럽 교회와 학문의 공용어였어요.
그래서 이 책은 중세 유럽 대학과 수도원에서 논리학 표준 교과서가 됐어요.
1000년간이요.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거의 모든 중세 신학자가 이 책으로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배웠어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13세기 가톨릭 교회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기독교 교리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인물이에요.
기독교를 가장 정교하게 논증하는 데 쓰인 사고의 틀이, 기독교를 가장 정교하게 공격했던 사람에게서 온 거예요.
포르피리오스 본인은 이 아이러니를 알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1000년간 수도원에서 매일 아침 그의 교과서를 필사하던 수도사들은 과연 알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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