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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들이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싯다르타가 한 말은 축복이 아니라 한숨이었어요.
그는 그 아이를 라훌라(Rāhula)라고 불렀는데, 이 이름의 뜻은 '장애물' 혹은 '구속'이에요.
기원전 6세기경, 카필라성의 왕자 싯다르타는 이미 출가를 결심한 상태였어요.
왕궁과 권력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겠다는 결심이었죠.
그런데 바로 그날,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날 밤 싯다르타는 잠든 아내 야쇼다라의 방 문 앞에 섰어요.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마음이 흔들릴 것 같아 그러지 않았어요.
멀리서 아이의 얼굴만 한 번 본 뒤 궁을 빠져나갔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큰 결심을 앞두고 가족 단톡방 알림을 끄고, 아이 사진을 뒤집어두는 행동.
자기 마음이 흔들릴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거리를 두는 거잖아요.
싯다르타는 그 거리를 아들의 이름에 새겨넣었어요.
"이 아이가 내 장애물이다"라고 쓴 게 아니에요.
"이 아이가 내 마음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기 자신에게 각인시킨 거예요.

6년을 굶은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의외였어요.
굶는 것은 답이 아니었어요.
출가 직후 싯다르타는 당시 인도에서 유행하던 고행(苦行)의 길을 걸었어요.
고행이란 몸을 극단적으로 혹사함으로써 영적 진리에 도달하려는 수련법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몸을 완전히 망가뜨릴수록 마음이 자유로워진다"는 믿음이에요.
싯다르타는 하루에 쌀 한 톨, 깨 한 알로 버텼다고 전해져요.
갈비뼈가 다 드러날 정도로 야위어갔고, 어느 날 강가에서 그냥 쓰러졌어요.
그때 마을 처녀 수자타가 지나가다 그에게 우유죽을 내밀었어요.
싯다르타는 그것을 받아 마셨어요.
그를 따르던 다섯 수행자는 "드디어 타락했다"며 등을 돌리고 떠나버렸어요.
하지만 그 '타락'의 순간이 불교 핵심 사상의 출발점이 돼요.
그것이 바로 중도(中道)예요.
극단적 쾌락도, 극단적 고행도 아닌 균형의 길이라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 달째 극단적 다이어트를 하다가 "이건 내 몸을 망치는 짓이지, 답이 아니야"라고 깨닫는 순간과 같아요.
싯다르타는 6년을 낭비한 게 아니었어요.
6년을 써서 잘못된 길을 확인한 거예요.
그 확인이 없었다면 중도라는 개념도 없었을 거예요.

깨달음을 얻은 그 순간, 붓다가 가장 먼저 한 결심은 가르치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우유죽을 마신 뒤 기력을 회복한 싯다르타는 인도 부다가야 근처의 커다란 무화과나무, 보리수 아래에 앉았어요.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어요.
오늘날 불교에서는 이 순간을 성도(成道), 즉 진리의 길을 이룬 날로 기념해요.
그런데 붓다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너무 깊고 미묘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해봐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가르치지 않고 그냥 혼자 사라지려 했어요.
이 장면이 불교 경전 『상응부(相應部)』에 그대로 기록돼 있어요.
『상응부』는 붓다의 말씀과 대화를 모아놓은 경전 모음집이에요.
놀라운 건, 종교의 창시자가 자기 종교를 포기하려 한 순간을 그 종교의 경전이 지우지 않고 남겼다는 거예요.
경전에 따르면 범천(梵天)이 하늘에서 내려와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어요.
범천은 인도 신화에서 세계를 창조한 신이에요.
그 신이 "제발 가르쳐달라"고 세 번 청한 끝에 붓다는 마음을 돌렸어요.
어렵게 풀어낸 수학 문제를 친구에게 설명하려다 "아, 됐다. 어차피 못 따라올 거야"라며 지우개를 내려놓는 기분이에요.
그런데 누군가 "제발 보여줘"라고 세 번 부탁한 거죠.
붓다의 첫 설법은 거절하려다 설득당한 결과였어요.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은 자신을 죽인 음식을 만든 사람을 위한 변호였어요.
80세의 붓다는 여행 중 춘다(Cunda)라는 대장장이의 집에 머물렀어요.
춘다는 귀한 손님을 맞아 수까라맛다바(sukara-maddava)라는 음식을 공양했어요.
이 음식이 돼지고기였는지, 아니면 돼지가 좋아하는 땅속 버섯인 송로버섯이었는지는 지금도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엇갈려요.
붓다는 그것을 먹은 뒤 심한 복통과 설사로 쓰러졌어요.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어요.
결국 인도 쿠시나가라 지방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숨을 거뒀어요.
사라쌍수는 두 그루의 사라나무 사이를 말해요.
붓다는 그 나무들 사이에 오른쪽으로 누운 채 제자 아난다를 불렀어요.
아난다는 붓다의 오랜 시자, 즉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제자예요.
"춘다가 자책하지 않게 하라."
붓다는 그렇게 말했어요.
"마지막 공양이 가장 큰 공덕이라고 전하라"고도 했어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죄책감을 먼저 면제해준 거예요.
자기를 다치게 한 사람이 사과도 꺼내기 전에 "네 잘못 아니야"라고 먼저 말해주고 떠나는 친구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긴 말은 이랬어요.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자신을 죽인 음식을 먹고 숨이 끊겨가는 순간에도, 그 말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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