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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계가 선(Zen)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단 한 명의 승려도 아닌 사람 덕분이었어요.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는 가마쿠라의 엔가쿠지 절에서 수행했어요.
엔가쿠지는 일본 임제종의 대표 사찰인데, 임제종은 선불교의 한 갈래로 화두 수행으로 유명해요.
오늘날로 치면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 선원 같은 곳이에요.
그는 스승 샤쿠 소엔 아래서 수년간 수행해 견성 체험까지 해냈어요.
견성(見性)이란 글자 그대로 '본성을 본다'는 뜻으로, 선불교에서 수행자가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좌선 끝에 자신의 참된 본성을 꿰뚫어 보는 결정적 순간이에요.
쉽게 말하면 "아, 이게 전부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인데, 선원에서 이걸 경험한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런데 스승은 그에게 승복 대신 '다이세쓰(大拙)'라는 호를 내렸어요.
'큰 어리석음'이라는 뜻인데, 선에서는 모든 걸 안다는 교만을 내려놓은 상태를 오히려 가장 높게 쳐요.
그리고 다이세쓰는 그 이름을 받은 채 끝내 출가하지 않았어요.
제자를 거느린 적도, 사찰 주지가 된 적도 없어요.
평생 거사(居士), 즉 절 밖에서 수행하는 재가 불교인으로 남았어요.
승복도, 공식 사제 관계도, 주지직도 없는 사람이 훗날 '선의 세계적 대표자'가 된 거예요.
비유하자면, 신학교를 다니며 교수에게 인정받고 깊은 체험까지 했지만 목사 가운을 입지 않고 평생 경전 번역만 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바로 그 선택이, 이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들어요.

다이세쓰가 도착한 곳은 도쿄도 보스턴도 아닌, 시카고 남쪽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었어요.
1897년, 27세의 다이세쓰는 미국으로 건너갔어요.
목적지는 일리노이주 라살(La Salle)이라는 소읍으로, 거기에 오픈 코트 출판사(Open Court Publishing)가 있었어요.
이 출판사는 동양과 서양의 종교·철학을 영어로 소개하는 데 집중하던 곳이에요.
출판사 대표 폴 케러스(Paul Carus)는 독일 출신 철학자였어요.
그는 동양 사상을 진지하게 탐구하고 싶었지만 한자 원문 앞에서 막혀 있었거든요.
다이세쓰는 그 벽을 허물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두 사람의 11년이 시작됐어요.
창밖으로 끝없는 옥수수밭이 펼쳐진 작은 마을에서, 다이세쓰는 한문으로 쓰인 불교 경전을 영어로 옮겼어요.
대표적인 번역이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영역본인데, 대승불교의 근본 이론을 담은 논서예요.
어학원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한국 청년이 아이오와 옆 시골 마을 출판사에 묻혀 한문 고전을 영어로 번역하며 10년을 보낸 셈이에요.
그런데 그 10년이 결정적이었어요.
일본어 원고를 영어로 번역한 게 아니에요.
처음부터 영어로 사고하고 영어로 쓰는 훈련을 그 옥수수밭에서 한 거예요.
훗날 다이세쓰가 서양 독자의 감각에 딱 맞는 문체로 선을 설명할 수 있었던 건, 그 11년이 몸에 새겨졌기 때문이에요.

다이세쓰의 영어가 더 매끄러워진 건, 책상 맞은편에 앉은 한 미국인 여성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1911년, 41세의 다이세쓰는 비어트리스 레인(Beatrice Lane)과 결혼했어요.
비어트리스는 미국인 신지학자(神智學者)로, 신지학이란 동양 종교와 서양 신비주의를 결합해 '인류 보편의 진리를 탐구하자'는 19세기 사상 운동이에요.
쉽게 말하면, 두 사람 모두 동양 사상에 진심인 지식인이었고 그래서 만난 거예요.
부부는 1921년 일본 교토에서 영문 학술지 〈동양 불교도(The Eastern Buddhist)〉를 창간했어요.
매호 선불교의 역사, 사상, 수행법을 영어로 정리해 서양 독자에게 전달했어요.
1939년 비어트리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28년간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원고를 편집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한국인 남편과 미국인 아내가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한국 사상을 영어로 소개하는 풍경이에요.
차이가 있다면 그들은 100년 전에, 학술지라는 형식으로 그 일을 해냈어요.
비어트리스는 단순한 편집 보조가 아니었어요.
불교 연구자로서 직접 논문을 썼고, 서양 독자에게 어떤 언어와 개념이 와닿는지를 감각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그 감각이 28년에 걸쳐 다이세쓰의 글에 녹아들었어요.
일본 선을 영어 세계에 처음 정착시킨 출판 프로젝트는 혼자 뛰어난 학자의 작업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권 출신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이었어요.

잭 케루악이 〈다르마 행자〉를 쓰기 직전, 그가 강의실에서 마주 앉았던 사람이 바로 다이세쓰였어요.
1952년, 82세의 다이세쓰는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소수만 들었는데, 입소문이 퍼지면서 강의실이 가득 찼어요.
잭 케루악은 이 시기 뉴욕에 있었어요.
그는 1957년 〈길 위에서〉를 쓴 작가로,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의 상징 같은 인물이에요.
비트 세대란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획일적인 중산층 문화에 반기를 들고, 즉흥·자유·비서양 사상에서 출구를 찾던 젊은 예술가·작가 무리를 가리켜요.
앨런 긴즈버그, 작곡가 존 케이지,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 심리학자 카를 융이 모두 다이세쓰의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았어요.
특히 존 케이지는 다이세쓰의 강의를 직접 들은 뒤, 우연과 침묵을 음악에 끌어들이는 실험적 작곡 방식을 발전시켰어요.
선의 '머리를 비워라'는 태도가 아방가르드 음악으로 번역된 거예요.
1957년, 87세의 다이세쓰는 멕시코에서 에리히 프롬과 함께 '선과 정신분석'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어요.
선불교와 프로이트 계열 심리학을 한 자리에서 대화시키는 자리였어요.
그의 나이 87세에 그가 하고 있는 일이었어요.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일본이 2차대전 패전 이후 가장 위축되어 있던 시기에 벌어졌어요.
나라는 무너졌지만, 그 나라 출신의 한 평신도 노학자가 미국 카운터컬처의 정신적 원천이 되어 있었어요.
승복도, 제자도, 주지직도 없이.
그저 '큰 어리석음(大拙)'이라는 이름 하나를 가슴에 품고.
과연 '다이세쓰'라는 이름을 붙여준 스승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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