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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 후반 수리물리학을 다시 쓴 인물은, 22살까지 자기 진로가 정치 기자라고 믿었어요.
1971년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으로 졸업한 에드워드 위튼은, 이듬해 민주당 대선 후보 조지 매거번의 캠프에서 일했어요.
매거번은 베트남 전쟁 반대를 내걸고 닉슨과 맞붙은 진보 후보였는데, 선거에서 역사적인 대패를 당했죠.
위튼은 그 캠프에서 정책 연구와 글쓰기를 담당했고, 《더 네이션》과 《뉴 리퍼블릭》에 정치 기사를 기고했어요.
정치학과 출신 친구가 갑자기 의대에 가서 노벨 의학상을 받은 상황을 상상하면 비슷한 충격이에요.
훗날 "끈이론의 황제"로 불릴 인물이, 22살까지 물리학 강의를 거의 들은 적이 없었다는 뜻이거든요.
1973년 가을, 프린스턴 물리학과는 학부 강의 노트도 없는 대학원생을 받아들였어요.
매거번이 패배한 뒤, 위튼은 위스콘신 대학에서 응용수학을 잠깐 공부하다가, 그해 프린스턴 물리학 박사과정에 합격해요.
클래식 피아노를 한 번도 친 적 없는 사람이 줄리아드 대학원에 입학한 것과 같아요.
일반적으로 물리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려면 학부 4년 동안 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 통계역학 등 수십 과목을 통과해야 해요.
위튼은 그 과정을 통째로 건너뛰었어요.
그런데도 지도교수 데이비드 그로스가 그를 받아들였어요.
그로스는 훗날 노벨물리학상을 받는 물리학자예요.
위튼은 그 밑에서 학부 수준 물리학을 거의 독학으로 따라잡으며 1976년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입학부터 박사까지 단 3년이 걸렸어요.
수학자가 아닌 사람이 수학계 최고상을 받은 일은, 1936년 시상이 시작된 이래 1990년 위튼 단 한 번뿐이에요.
필즈상은 40세 이하 수학자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노벨상이 없는 수학 분야에서 최고의 영예로 꼽혀요.
1990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위튼은 이 상을 받았어요.
시상 이유는 "초끈이론에서 출발해 매듭이론과 4차원 다양체 이론에 새 수학적 통찰을 제공한 공로"였어요.
매듭이론은 공간 속에 놓인 매듭을 수학적으로 분류하는 학문인데, 어떤 두 매듭이 본질적으로 같은 모양인지 판별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예요.
위튼은 물리학 언어로 그 분류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냈어요.
평생 회계만 해온 사람이 퓰리처상을 받은 것과 같고, 더 놀라운 건 그가 받은 분야의 글을 그 회계법으로 써냈다는 거예요.
위튼은 평생 수학과에 적을 둔 적이 없어요.
그리고 2026년 현재까지도, 그는 필즈상을 받은 유일한 물리학자예요.
1995년 봄, 위튼은 단 한 차례 강연으로 끈이론 학계 전체의 지도를 새로 그렸어요.
당시 물리학계에는 다섯 가지의 초끈이론이 경쟁하고 있었어요.
초끈이론은 우주의 모든 입자가 아주 작은 '끈'의 진동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인데, 그 다섯 버전이 서로 다른 수식과 차원을 가지면서 어느 것이 '진짜'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어요.
USC에서 열린 'Strings 1995' 학회에서, 위튼은 이 다섯 이론이 사실 11차원의 어떤 단일 이론에서 파생된 같은 이론이라는 걸 발표해요.
다섯 개 라이벌 앱 스토어가 사실은 모두 한 본사 건물의 다른 출구였다고 한 사람이 증명한 상황이에요.
그는 이 통합 이론에 M이론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런데 그는 'M'이 무엇의 약자인지 끝내 정의하지 않았어요.
"Mystery(신비), Magic(마법), Membrane(막) 중에서 독자가 원하는 걸 골라라"라고 말했을 뿐이에요.
가장 야심찬 통일 이론을 발표하면서, 정작 이름조차 완성하지 않은 거예요.
위튼은 지금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역사학도로 시작해 수학의 최고상을 받고, 이름도 정하지 않은 이론으로 학계의 지도를 바꾼 사람.
그렇다면 지금 물리학 어딘가에, 우리가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또 다른 M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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