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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서양 철학을 통째로 들여온 스승을 공개적으로 무너뜨린 사람은, 다름 아닌 그 스승이 가장 아끼던 제자였어요.
다나베 하지메는 1919년 교토제국대학에 부임했고, 당시 일본 근대 철학의 시조인 니시다 기타로의 후계자로 꼽혔어요.
니시다는 서양 철학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해 '절대무(絶對無)'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이에요.
쉽게 말하면, 존재의 맨 밑바닥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 있고, 그 공허함 속에서 오히려 모든 것이 나온다는 사상이에요.
그런데 1930년, 다나베는 논문 하나를 발표해요.
제목이 「니시다 철학을 묻는다」였어요.
스승의 핵심 사상을 정면으로 겨냥한 공개 비판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회사에서 자기를 키워준 부장이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그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 분의 접근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발언하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이어받는 것.
동료들이 수군거렸고 니시다도 상처를 받았다고 전해져요.
하지만 다나베는 멈추지 않았어요.
"스승이라는 이유만으로 틀린 것을 맞다고 할 수 없잖아"가 그의 논리였거든요.
철학자로서는 옳은 말이에요.
하지만 그 철학자가 10년 뒤 강의실에서 무엇을 가르쳤는지를 알고 나면, 이 장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해요.
강의실에서 다나베가 했던 말은 며칠 뒤 비행기 조종석에서 되살아났고,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1943년은 태평양전쟁의 한복판이었어요.
일본 정부는 대학생에게도 징집 유예를 폐지하고 전선으로 보내기 시작했어요.
이른바 학도병이에요.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던 스무 살짜리 청년들이 군복을 받아 드는 상황이었어요.
그 시기, 다나베는 교토대학에서 '죽음의 철학'이라는 강의를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설파했어요.
"국가를 위한 죽음은 허무한 소멸이 아니야. 절대무로 돌아가는 거거든."
스승 니시다에게서 배운 그 절대무 개념을, 다나베는 이제 죽음의 논리로 가져왔어요.
존경받는 교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에요.
강의를 듣고 자원입대를 결심한 학생들이 생겨났어요.
그들은 특공대, 즉 가미카제로 출격했어요. 폭탄을 실은 비행기를 적 함선에 직접 충돌시키는, 처음부터 살아 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한 작전이었어요.
가장 추상적인 형이상학이 가장 구체적인 죽음의 명령서가 됐어요.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다나베는 살아남았어요.

전쟁이 끝난 날, 일본 철학계의 정점에 있던 다나베는 짐을 싸서 산으로 들어갔고, 다시는 도쿄도 교토도 밟지 않았어요.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했어요.
살아남은 군인들이 거리로 돌아왔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의 부모도 그 거리에 있었어요.
다나베는 그 거리에 있을 수 없었어요.
그는 가루이자와로 떠났어요.
나가노현 산악 지대에 있는 작은 휴양지예요.
거기에 산장 하나를 얻어 들어갔어요.
자신이 한 말을 믿고 전장에 나간 제자들이 있었고, 그 제자들은 죽었어요.
그 사실을 안고 교토 거리를 걸어 다니는 일은, 다나베에게 불가능했을 거예요.
자신의 결정 때문에 누군가 죽었을 때, 그 가족과 같은 동네에서 살 수 없어 도시를 떠나는 사람의 심정이랄까요.
그 뒤로 약 17년, 다나베는 산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누군가는 도망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참회라고 했어요.
그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서, 다나베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다나베가 산에서 쓴 철학은 새로운 이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피고석에 세우는 한 권의 자술서였어요.
1946년, 다나베는 『참회도로서의 철학(懺悔道としての哲学)』을 출간했어요.
제목 그대로예요. 철학을 다시 시작하려면 먼저 참회해야 한다는 선언이에요.
그가 이 책에서 한 말의 핵심은 이거예요.
"나는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어. 더 나쁘게는, 내 말이 그들을 전장으로 이끌었어. 그 죄를 인정하는 것에서만 철학이 다시 시작될 수 있어."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사고를 낸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거나 조용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평생 교통안전 강사로 사는 길을 택하는 것.
자기 잘못을 삶의 출발점으로 삼는 방식이에요.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전쟁 중 가장 적극적으로 죽음의 철학을 가르친 사람이, 전후 일본에서 가장 깊은 참회의 철학을 쓴 사람이 됐어요.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몰라요.
다나베는 1962년 가루이자와의 산장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교토도 도쿄도 끝내 다시 밟지 않았어요.
그가 강의실에서 했던 말을 믿고 비행기에 올라탄 학생들이 있었어요.
그 학생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지금 몇 이나 남아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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