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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스무 살의 니시타니 게이지는 결핵 진단서를 받았고, 그날부터 철학은 그에게 학문이 아니라 생존 문제였어요.
1900년에 태어난 니시타니는 열일곱 살에 이미 아버지를 결핵으로 떠나보냈어요.
그리고 몇 년 뒤, 같은 병이 자신을 찾아왔습니다.
시한부 진단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책을 쌓아두기 시작하는 장면, 상상이 가나요?
니시타니가 바로 그랬어요.
그는 살아남기 위해 철학을 시작했습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그는 니시다 기타로의 강의를 들어요.
니시다는 동양의 선(禪) 불교와 서양 철학을 처음으로 결합한 사람으로, 교토학파의 창시자예요.
교토학파란 교토 대학을 중심으로 동서양 철학을 융합하려 했던 일본 철학자 그룹이에요.
니시타니에게 그 강의는 단순한 수업이 아니었어요.
"왜 나는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가가는 통로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허무주의와 씨름하는 철학자의 길로 들어섰어요.
니시타니가 프라이부르크에 도착한 1937년, 그의 스승 하이데거는 이미 나치당원이었고 강의실 밖에는 군화 소리가 울리고 있었어요.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을 쓴 20세기 독일의 대철학자예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근본부터 다시 쓴 사람이에요.
니시타니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39년까지 그의 세미나에 직접 참석했어요.
그들이 함께 연구한 인물 중 하나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였습니다.
에크하르트는 13세기 중세 독일의 신비주의자로,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을 설파한 수도사예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하이데거는 '존재'를 가르치는데, 니시타니는 오히려 자기 안의 '무(無)'와 마주쳤어요.
존재를 배우러 갔다가 공허함의 밑바닥을 발견한 거예요.
갈망하던 스승을 만나러 외국까지 갔는데, 그 도시가 전쟁 직전의 광기에 휩싸여 있는 풍경.
니시타니는 허무주의와 전쟁이라는 두 개의 심연 사이에 서 있었습니다.
그 2년은 그의 철학이 결정적으로 형성된 시간이었어요.
1942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의 한복판에 있을 때 니시타니는 도쿄의 한 회의실에 앉아 "서양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어요.
그가 참여한 것은 잡지 『문학계』가 주최한 '근대의 초극(近代の超克)' 좌담회였어요.
'서구 근대를 넘어선다'는 뜻의 토론 자리였고, 일본의 정신적 사명을 철학적으로 논했습니다.
당시 니시타니에게 이것은 진심이었어요.
유럽에서 직접 목격한 나치즘의 폭력과 허무주의를 보며 "서구 근대는 스스로 붕괴하고 있다"고 믿었거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발언은 일본 제국주의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이용됐어요.
전쟁이 끝난 뒤, 이 좌담회는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짐이 됐습니다.
회의 자리에서 진심으로 한 말이, 시간이 지나 잘못된 역사의 증거로 남는 것.
니시타니는 이 오점을 끝내 완전히 씻어내지 못했어요.
니시타니가 강단에서 쫓겨난 그 5년 동안, 그는 평생 답하지 못한 질문에 마침내 답했어요.
1947년,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전후 일본을 점령 통치한 미군 주도의 행정 기관)의 공직 추방령으로 니시타니는 교토대 강단에서 쫓겨났어요.
전쟁 협력 혐의였습니다.
직장을 잃고 텅 빈 시간이 생겼을 때, 오히려 미뤄왔던 질문이 앞에 와서 섰어요.
"허무주의에는 어떻게 답할 수 있는가?"
니시타니는 바로 이 물음의 답을 서양이 아닌 동양에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 강단에 복귀한 그는, 1961년 평생의 대표작 『종교란 무엇인가(宗教とは何か)』를 출간해요.
이 책에서 그는 공(空)으로 서양의 허무주의에 응답합니다.
공이란 "모든 것에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에요.
그런데 니시타니의 공은 단순한 '없음'이 아니에요.
허무주의가 "어차피 아무것도 없어"라는 결론에서 무너진다면, 공은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모든 것이 연결되고 살아있다"는 시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내 정체성은 고정된 게 아니야"라는 느낌이 불안이 아니라 자유로 전환되는 순간 같은 거예요.
허무주의의 심연을 끝까지 내려가면, 그 바닥에 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었어요.
그 바닥은 무너짐이 아니라 땅이었습니다.
강단을 빼앗기고, 전쟁의 오점을 짊어진 뒤에야 그는 그것을 손으로 만질 수 있었어요.
1990년에 생을 마친 니시타니는, 결핵 진단서를 받던 스무 살의 질문을 아흔 살까지 안고 살았어요.
"왜 사는가"라는 물음에 평생 걸쳐 답한 그의 여정을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이 있어요.
나는 지금 내 안의 허무함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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