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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이초가 평생을 걸고 싸운 한 장의 종이는, 그가 죽고 7일 뒤에야 산을 올라왔다.
822년 6월 4일, 사이초는 55세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6월 11일, 사가 천황의 칙서가 비예이산에 도착했다.
칙서에는 사이초가 평생 청원한 단 하나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대승계단(大乘戒壇) 설립 허가였다.
대승계단이란 승려가 정식 승려로 인정받는 수계 의식을, 비예이산이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평생 독립 법인 설립 허가를 내달라고 정부에 청원하다가 죽었는데, 발인 7일 뒤에 "허가가 났습니다"라는 우편물이 도착한 것.
그 우편물을 받아 든 제자들은 무슨 표정이었을까요.

지금 비예이산(比叡山)에는 1700개의 절이 있다.
사이초가 처음 그 산을 올랐을 때는 절이 한 채도 없었다.
비예이산은 지금의 교토 동북쪽에 있는 산이에요.
사이초(最澄)는 12세에 출가해 지역 사찰에서 수행하다가, 18세에 스스로 비예이산을 택했다.
아무도 없는 산에 작은 초암을 짓고, 12년간 홀로 수행했다.
아무도 시킨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802년, 환무 천황의 명령으로 당나라 유학단에 합류하게 됐다.
사이초는 당나라에서 천태종을 배웠다.
천태종은 《법화경》을 중심에 놓고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불교 사상이에요.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사이초는 비예이산에 천태종 사찰을 세웠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승려를 정식으로 키울 권한이 없었다.

사이초가 쿠카이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한 것은 책 한 권이었다.
쿠카이는 사이초보다 다섯 살 어린 승려였다.
그는 일본 진언종을 창시한 인물로, 밀교를 일본에 처음 체계적으로 가져온 사람이에요.
밀교란 스승에게 직접 몸으로 배우는 비밀 수행법이다.
일반 불교가 경전을 읽고 이해하는 방식이라면, 밀교는 스승 없이는 전수 자체가 안 되는 방식이에요.
사이초는 이 밀교를 배우려고 나이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쿠카이를 직접 찾아가 제자처럼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다 사이초의 수제자 태범(泰範)이 스승을 버리고 쿠카이 문하로 떠나버렸다.
그래도 사이초는 쿠카이에게 밀교 경전 하나를 빌려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이취석경(理趣釈経)이었다.
쿠카이의 대답은 이랬어요.
"이 경전은 글로 배우는 게 아니에요. 직접 수행해야 이해할 수 있어요."
사이초가 문자로 밀교를 흡수하려 한다는, 부드럽지만 명확한 거절이었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 끝내 만나지 않았다.
일본 불교의 양대 산맥이, 책 한 권 때문에 절교한 것이다.
어쩌면 태범 사건에서 이미 금이 간 관계를, 책 한 권이 그냥 확인해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이초의 진짜 유산은 천태종이 아니다.
비예이산이라는 학교다.
그가 죽고 나서 그 산에서 일본 불교가 완전히 새로 쓰였으니까.
사이초가 평생 싸워서 얻으려 한 것은 나라의 도다이지(東大寺)로부터 독립된, 비예이산만의 수계 권한이었다.
도다이지는 나라 시대에 국가가 세운 일본 최대 관영 사찰로, 당시 정식 승려를 인정하는 유일한 기관이었다.
나라 불교계는 이 청원을 8년간 거부했다.
하지만 사이초 사후, 그 권한이 생긴 비예이산에서 어떤 사람들이 나왔는지 보면 입이 벌어진다.
호넨(法然)은 정토종을 열었고, 그의 제자 신란(親鸞)은 정토진종을 만들었다.
도겐(道元)은 조동선을, 니치렌(日蓮)은 일련종을 세웠다.
오늘날 일본에서 신자 수 기준 4대 불교 종파가 모두 비예이산 출신이에요.
비유하자면, 분사 설립 허가를 평생 거절당한 창업자가 사후에야 허가를 받았더니, 그 분사에서 토요타·소니·혼다·파나소닉이 줄줄이 나온 셈이에요.
그것도 전부 창업자가 죽고 나서.
그가 평생 거절당한 그 한 장의 종이가, 죽고 나서 일본 불교의 지도를 다시 그렸다.
7일 늦게 온 칙서, 그리고 그 칙서가 만든 산.
이 이야기에서 가장 조용한 반전은, 사이초 본인은 그 결과를 끝내 보지 못했다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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