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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동학을 만든 사람은 양반이었지만, 양반이 될 수 없는 양반이었어요.
1824년 경주에서 태어난 최제우는 아버지가 지역에서 이름 난 유학자였어요.
그런데 그의 어머니는 한 번 다른 결혼을 했다가 아버지에게 재가한 여성이었어요.
조선에서 이게 왜 문제냐고요?
당시 조선 법은 재가한 여성의 자식에게는 과거시험 자격을 주지 않았어요.
과거시험은 오늘날의 공무원 시험과 대학 입시를 합친 것과 같아요.
이 시험을 볼 수 없다는 건, 사회가 만들어 둔 출세의 사다리 자체에서 내려진다는 뜻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명문대 교수의 자녀인데, 호적 한 줄 때문에 정작 본인은 수능 응시 자격 자체가 없는 상황이에요.
아버지 최옥은 예순 살에야 얻은 늦둥이라 아들을 끔찍이 아꼈어요.
하지만 아버지의 사랑이 신분제를 바꿔주진 않았어요.
그리고 이 출생의 벽이 훗날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혁명적 사상을 낳는 씨앗이 됐어요.
서른한 살의 최제우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의 짐은 빚더미와 답을 찾지 못한 질문 하나뿐이었어요.
스무 살 무렵부터 약장수, 무명베 장사로 전국을 유랑했어요.
10년을 돌아다니며 그가 본 조선은 교과서 속 조선이 아니었어요.
굶어 죽는 농민, 콜레라로 마을 전체가 휩쓸리는 참상, 서양 세력이 물밀듯 밀려오는데 유교 경전에는 이 상황에 맞는 답이 한 줄도 없었거든요.
서학, 그러니까 서양에서 들어온 천주교도 번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유교도, 천주교도 최제우가 눈으로 본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했어요.
결국 그는 고향으로 돌아왔어요.
가진 것은 빚과, 더 커진 절망이었어요.
하지만 이 절망이 중요한 이유가 있어요. 절망이 깊어야 질문도 깊어지거든요.
신이 저 하늘 위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말, 조선에서 이 말은 종교가 아니라 폭탄이었어요.
고향 경주 근처 용담정이라는 작은 정자에서 홀로 수련하던 그날, 최제우는 갑자기 몸이 떨리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목소리를 들었다고 기록했어요.
"두려워 말라.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吾心卽汝心)."
이 체험에서 나온 것이 시천주(侍天主)예요.
시천주란 모든 사람이 이미 한울님, 그러니까 하늘님을 자기 안에 모시고 있다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넌 이미 답을 갖고 태어났어, 밖에서 찾지 마"라는 말과 같아요.
이게 왜 폭탄이냐고요?
조선은 임금이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린다는 논리 위에 세워진 나라였어요.
그런데 최제우는 "하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고 선언했어요.
임금만 하늘과 가까운 게 아니라, 천민도 하늘을 모신다는 말이니까요.
그게 조선의 신분 질서에 어떤 의미인지, 조정은 바로 알아챘어요.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은 지 4년 만에 그의 목은 대구 저잣거리에 걸렸어요.
하지만 그의 말은 30년 후 조선 전체를 뒤흔들 불씨가 됐어요.
1860년 깨달음 이후 불과 3년 만에 동학 신도는 수만 명으로 불었어요.
평등을 말하는 종교, 신분제를 부정하는 메시지가 이렇게 빠르게 퍼졌다는 건, 그만큼 많은 사람이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에요.
1863년 12월 조정은 그를 체포했어요.
죄명은 좌도난정(左道亂正), 직역하면 "삿된 가르침으로 올바른 세상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뜻이에요.
1864년 4월 15일, 대구 관덕정에서 그는 참수됐어요.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아요.
그가 죽은 지 30년 후, 그의 가르침을 품은 농민들이 동학농민혁명을 일으켰어요.
수십만 명이 봉기해 조선 왕조 자체를 뒤흔든 그 혁명의 뿌리는, 한 몰락 양반이 산속 정자에서 들은 목소리 하나였어요.
"내 마음이 곧 네 마음이다."
그 말이 조선을 어디까지 흔들지,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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