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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당 태종이 가장 아낀 승려는, 그 황제의 명령을 어긴 범죄자로 시작했어요.
627년경, 27살의 현장은 당나라 황제가 선포한 과소령을 어기고 국경 도시 양주를 몰래 빠져나갔어요.
과소령이란 황제 허락 없이 국경을 넘지 못하게 하는 출국 금지령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비자 발급이 거부됐는데도 짐을 싸서 공항으로 향한 유학생이 딱 그 상황이에요.
현장은 국경에서 적발됐어요.
하지만 그의 결심을 알아본 관리 이대량이 눈을 감아줬어요.
그렇게 시작한 여정이 17년이 됐어요.
돌아왔을 때, 황제는 직접 마중을 나왔어요.

물병을 떨어뜨리는 순간, 현장은 살아 돌아가는 길을 스스로 막았어요.
중국과 중앙아시아 사이에는 막하연적이라는 구간이 있어요.
고비 사막 한복판, 사람 없는 800리 길이에요.
현장은 이 구간을 건너다 물주머니를 떨어뜨렸어요.
사막에서 물을 잃는 건 곧 죽음이에요.
그 순간 현장은 맹세했어요. "동쪽으로 한 걸음 돌리느니 서쪽으로 죽겠다."
돌아가면 살 수 있었어요. 하지만 그는 앞으로 걸었어요.
4박 5일을 물 한 모금 없이 버텼어요.
의식을 잃어가던 순간, 그를 태운 늙은 말이 갑자기 방향을 틀었어요.
그 말이 이끈 곳에 오아시스가 있었어요.

현장은 인도가 자신을 신처럼 떠받든다는 걸 알면서도 그곳을 등졌어요.
현장은 인도에서 날란다 사원에 머물며 5년간 공부했어요.
날란다는 당시 세계 최대 불교 대학으로,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와 옥스퍼드를 합친 곳에 전액 장학금으로 입학한 셈이에요.
각지에서 몰려든 학자 수천 명이 이곳에서 공부했어요.
인도 북부의 군주 하르샤 왕은 현장을 위해 18일간 종교 대토론회를 열었어요.
당대 인도 최고의 학자들이 모인 자리였고, 하르샤 왕은 그에게 인도에 남을 것을 권했어요.
박사 과정을 마치고 명문대 종신 교수직 제안을 받은 것과 같은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현장은 거절했어요.
657부의 산스크리트 경전을 짊어지고 귀국길에 올랐어요.
가장 환대받는 자리를 스스로 떠난 거예요.

현장이 적은 17년치 일지는, 1,200년 뒤 인도가 자기 과거를 되찾는 지도가 됐어요.
645년에 귀국한 현장은 당 태종의 사면을 받고 19년간 번역에만 매달렸어요.
그렇게 나온 게 한자로 옮긴 불경 1,335권이에요.
그리고 그 여정을 기록한 여행기 «대당서역기»도 남겼어요. 138개국의 풍습과 지형, 사원의 위치까지 담긴 견문록이에요.
문제는 그 기록이 너무 정확했다는 거예요.
1,200년이 흐른 19세기, 영국 고고학자 알렉산더 커닝햄이 잊혀진 인도 불교 유적지를 발굴하려 했는데, 인도 현지 기록에는 단서가 없었어요.
결국 그가 집어든 건 현장의 여행기였어요.
붓다가 처음 설법을 한 곳인 녹야원,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 이 성지들의 위치를 커닝햄은 현장의 일기로 찾았어요.
무심코 적은 여행 메모가 1,000년이 넘어 고고학 지도가 된 거예요.
현장은 경전을 가져오려고 목숨을 걸었어요.
그런데 후세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건 경전이 아니라, 길에서 적어 내려간 메모였어요.
당신이 오늘 스마트폰에 저장한 여행 사진 한 장이, 천 년 뒤 어떤 역사가의 단서가 될지 누가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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