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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재상 자리를 받아들이면 평생이 보장됐다.
장자는 낚싯대도 들지 않은 채 거절했다.
기원전 4세기 무렵, 초 위왕은 사신 두 명에게 막대한 예물을 들려 강가로 보냈다.
목적은 하나였다.
위나라에서 짚신을 짜며 겨우 먹고살던 장자를 재상으로 데려오는 것이었다.
재상은 오늘날로 치면 국무총리 겸 경제부총리를 합친 자리다.
한 나라의 살림 전체를 총괄하고, 왕 다음으로 높은 권력을 쥔다.
사신들이 복수(濮水)라는 강가에서 낚시 중인 장자를 발견했을 때, 임무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자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강물을 바라본 채 이렇게 물었다.
"초나라에 신성하게 모셔지는 거북이가 있다죠. 비단에 싸여 상자에 담겨 신전에 놓인 그 거북이. 행복할까요, 아니면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는 거북이가 행복할까요?"
사신들이 "당연히 진흙 속 거북이죠"라고 답하자, 장자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세요.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나 끌고 다닐 테니."
평생 짚신을 짜서 먹고살던 사람이 천하를 호령할 자리를 단 한 문장으로 차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건 허세가 아니었다.
장자는 그 뒤로도 계속 짚신을 짰다.
아내가 죽은 날, 장자는 곡 대신 항아리를 두드렸다.
혜시(惠施)는 당대 최고의 논리학자이자 장자의 평생 토론 상대였다.
날카로운 언변으로 장자를 끊임없이 꼬집던, 그러면서도 누구보다 장자를 깊이 이해한 친구였다.
그 혜시가 조문을 갔을 때, 장자는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질그릇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는 참을 수가 없었다.
"함께 산 부인이 죽었는데, 곡도 안 하고 노래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소?"
장자가 답했다.
"처음엔 나도 슬펐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원래 형체도 없고 기운도 없었잖아요. 뭔가 뒤섞이다가 기운이 생기고, 기운에서 형체가 생기고, 형체에서 생명이 생겼다가, 이제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간 거예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바뀌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인데, 내가 그 옆에서 엉엉 울고 있으면 오히려 이치를 모르는 거 아니겠어요?"
장례식장에서 유족이 통곡 대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면 우리가 받을 충격과 비슷하다.
하지만 장자에게 그것은 슬픔을 외면한 게 아니었다.
슬픔을 통과한 사람이 도달한 다른 곳이었다.
꿈에서 깬 사람들 대부분은 다시 잠든다.
장자는 그 순간을 평생 들고 다녔다.
어느 날 장자는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다가 깨어났다.
그리고 이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건지, 지금 나비가 장주(莊周)가 된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장주는 장자의 본명이다.
이 짧은 문장은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 불린다.
호접지몽이란 '나비 꿈'이라는 뜻으로, 현실과 꿈의 경계, 나아가 '나'라는 존재의 경계 자체를 의심한 이야기다.
너무 생생한 꿈에서 깬 직후 "방금 그게 진짜 같았는데"라고 잠시 멍해지는 그 1초의 감각을 알 것이다.
장자는 그 1초를 쭉 늘려서 질문으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도 진짜라고 어떻게 확신하나?"
이 질문은 유럽에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선언하기 약 2000년 전에 나왔다.
데카르트는 의심 끝에 '생각하는 나'에서 확실성을 찾았지만, 장자는 그 '나'마저 의심했다.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을 먼저 던진 쪽은 장자였다.
재상 자리를 거절했던 노인은, 마지막에 자기 무덤마저 거절했다.
죽음을 앞둔 장자에게 제자들이 정성껏 장례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장자가 답했다.
"하늘과 땅이 내 관(棺)이고, 해와 달이 내 옥구슬이며, 별들이 내 부장품이고, 만물이 나와 함께 묻히는 동반자인데, 여기서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거냐?"
제자들이 당황해서 말했다.
"그렇게 들판에 두시면 까마귀와 솔개가 시신을 먹습니다."
장자가 되물었다.
"땅 위에 두면 까마귀가 먹고, 땅 밑에 묻으면 개미가 먹는다. 까마귀 입에서 빼앗아 개미한테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유언장에 '비싼 관 사지 말고 산에 풀어 새가 먹게 하라'고 쓴 노인을 상상하면 된다.
이게 장자가 실제로 남긴 마지막 말의 뜻이었다.
짚신을 짜며 살고, 재상 자리를 차버리고, 아내의 죽음 앞에서 노래를 부른 사람이 결국 자기 몸마저 자연에 그냥 돌려보내려 한 것이다.
그는 딱 하나의 생각을 살아냈다.
"나는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것이고, 그게 전부다."
그런데 자기 시체조차 거절한 이 사람의 질문 하나가 24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다는 게,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나비 꿈을 꾼 사람은 진작에 흙이 됐는데, 그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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