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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맹자는 왕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왕을 꾸짖었어요.
기원전 4세기경, 맹자는 자신의 뜻을 펼쳐줄 왕을 찾아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어요.
오늘날로 치면 취직 못 한 정치 컨설턴트가 이 회사 저 회사 면접을 보러 다닌 거예요.
그 첫 번째 큰 면접이 위(魏)나라 양혜왕(梁惠王) 앞이었어요.
왕은 먼 길 온 맹자에게 물었어요.
"선생은 이 먼 길을 오셨으니,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시겠습니까?"
그런데 맹자가 내뱉은 첫마디가 걸작이에요. "하필왈리(何必曰利), 어찌 이익을 먼저 말씀하십니까."
'우리 회사에 어떻게 기여하시겠습니까'라는 면접 질문에 '그 질문 자체가 잘못됐습니다'라고 받아치는 신입 지원자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그 일화가 그의 책 첫 페이지에 자랑처럼 실려 있어요.
《맹자(孟子)》는 맹자와 왕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바로 이 장면이 책의 첫 문장이에요.
맹자의 논리는 이랬어요.
왕이 이익을 먼저 말하면, 대신들도 이익을 말하고, 백성도 이익만 좇게 된다는 거예요.
결국 온 나라가 "어떻게 더 빼앗을까"만 생각하다 망한다고요.
그래서 이익이 아니라 인(仁)과 의(義), 쉽게 말해 사람다운 도리와 올바름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맹자를 채용하지 않았어요.

맹자는 왕의 얼굴을 보며 왕의 자리가 가장 가벼운 자리라고 말했어요.
다음 나라는 제(齊)나라였어요.
제선왕(齊宣王) 앞에서 맹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갔어요.
"민위귀 사직차지 군위경(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백성이 가장 귀하고, 나라가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장 가볍습니다."
사직(社稷)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국가' 그 자체를 가리켜요.
외부 자문가가 대표 회의에서 "직원이 제일 중요하고, 사장님은 솔직히 제일 가벼운 존재입니다"라고 발표하는 장면이에요.
그런데 맹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제선왕이 물었어요.
"옛날 폭군 주왕(紂王)을 무왕(武王)이 죽이고 나라를 세운 건, 신하가 임금을 죽인 게 아닌가요?"
맹자의 대답이에요.
"그 폭군을 죽인 건 '한 사내'를 죽인 것이지, 임금을 죽인 게 아닙니다."
이게 역성혁명(易姓革命) 논리예요.
왕이 백성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백성이 그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는 뜻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나쁜 CEO는 주주가 해임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맹자는 2300년 전에 이 말을 왕 앞에서 직접 했어요.
그래도 제선왕은 맹자를 채용하지 않았어요.

인구의 절반이 전쟁으로 죽어나가던 시대에, 맹자는 인간이 본래 선하다고 우겼어요.
맹자가 살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5세기~3세기 무렵)는 말 그대로 전쟁의 시대였어요.
일곱 나라가 끊임없이 서로를 죽이며 패권을 다투던 때로, 전쟁 한 번에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이 시대에 "인간은 본래 선하다"고 주장하는 건, 전쟁터 한가운데서 그 말을 외치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하지만 맹자는 증거가 있다고 했어요.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순간을 목격하면, 누구든 반사적으로 깜짝 놀라 손을 뻗는다."
그 무의식적인 1초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 다른 사람의 고통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하는 공감의 감정이에요.
맹자는 이 감정이 훈련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온 것이라고 봤어요.
이게 성선설(性善說)이에요. 스마트폰 공장 출고 상태에 이미 '도덕 앱'이 깔려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비슷한 시기 순자(荀子)는 정반대를 주장했어요.
"인간은 원래 욕심 덩어리다. 교육과 규칙으로 눌러야 한다." 이게 성악설(性惡說)이에요.
같은 혼란 속에서 한 사람은 인간에게 희망을 걸었고, 다른 한 사람은 인간을 의심했어요.
맹자는 끝내 자신의 답을 바꾸지 않았어요.

맹자가 죽고 1700년 뒤, 한 황제가 그의 책을 펴자마자 분노해 칼을 들이댔어요.
1372년, 명(明)나라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맹자를 읽다가 "민위귀, 군위경" 구절을 마주쳤어요.
주원장은 걸인 출신으로 반란을 일으켜 황제가 된 인물이에요.
바로 맹자의 논리, "폭군은 갈아치울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의 혁명을 정당화했던 그 사람이에요.
그런데 막상 황제가 되고 나니, 그 구절이 너무 위험하게 보인 거예요.
주원장은 즉시 명령을 내렸어요. "공자 사당에 모신 맹자의 위패를 당장 치워라."
공자 사당은 유학의 성지이자 오늘날의 국립대학 같은 상징이에요.
거기서 위패를 뺀다는 건 '맹자는 더 이상 공식 인정받는 사상가가 아니다'라는 선언이었어요.
신하들의 반대가 너무 거세서 위패는 결국 돌려놨어요.
하지만 주원장은 더 교묘한 방법을 택했어요. 1394년, 맹자에서 위험한 구절 85개를 삭제한 《맹자절문(孟子節文)》을 편찬한 거예요.
절문은 '잘라낸 글'이라는 뜻으로, 이 검열본을 과거시험 공식 교재로 강제했어요.
살아서는 어떤 왕에게도 쓰이지 못한 정치 컨설턴트.
그런데 죽고 1700년이 지나자, 황제가 직접 가위를 들었어요.
어쩌면 맹자의 말은 그 시대엔 너무 빨랐던 게 아니라, 딱 맞는 시대에 가장 위험한 사람에게 정확히 닿은 게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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