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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헨리 캐번디시는 영국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였지만, 평생 빛바랜 보라색 외투 한 벌만 입고 다녔어요.
1731년 명문 데번셔 공작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오늘날로 치면 태어나자마자 대기업 회장 가문에 등록된 셈이에요.
하지만 그는 그 막대한 재산으로 딱 하나를 샀어요.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죠.
런던 클래펌 커먼에 있는 자기 저택에 하인용 계단을 별도로 짓게 했어요.
집안일을 하다 하녀와 눈이 마주치면, 그 하녀는 그날로 해고였어요.
명령은 오직 종이쪽지를 책상에 올려두는 방식으로만 전달했어요.
동료 학자들은 그를 이렇게 묘사했어요.
"왕립학회에서 말 한마디 듣기가 가장 어려운 회원."
그런데 그 침묵하는 사람이,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측정 중 하나를 혼자 해냈어요.

그는 자기가 발견한 공기에 불을 붙였고, 그것이 폭발하는 것을 침착하게 기록했어요.
1766년, 아연 조각을 황산에 녹이다 기포가 올라오는 걸 보고, 유리병을 거꾸로 뒤집어 그 기체를 모았어요.
저울로 재봤더니, 이 기체는 일반 공기보다 약 14배 가벼웠어요.
불꽃을 가져다 대자 폭발했어요.
이 기체가 바로 오늘날의 수소예요.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이고, 태양이 타오르는 연료이기도 해요.
그 시대 학자들 대부분은 플로지스톤이라는 개념을 믿었어요.
불에 타는 물질 안에 "불의 원소"가 들어 있다는 생각인데, 오늘날로 치면 배가 고프면 뱃속에서 "허기 입자"가 빠져나간다고 믿는 수준이에요.
하지만 캐번디시는 플로지스톤 같은 말 대신, 저울 눈금만 믿었어요.

그는 지구를 들어 올린 적이 없어요.
대신, 두 개의 납공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을 6.74조분의 1뉴턴 단위로 쟀어요.
1798년, 나이 67세의 캐번디시는 친구 존 미첼이 미완성으로 남긴 장치를 완성했어요.
존 미첼은 지진학의 선구자이기도 한 자연철학자로, 이 장치를 만들다 세상을 떠났어요.
장치 이름은 비틀림 저울이에요.
가는 철사 끝에 작은 추 두 개를 매달고, 그 곁에 커다란 납공을 가져다 놓아요.
납공의 인력에 끌린 추가 철사를 아주 살짝 비틀며 회전하는데, 그 비틀림 각도로 중력을 기록하는 거예요.
화분이 창가 쪽으로 기울어지는 각도를 재서 햇빛의 세기를 역산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죠.
캐번디시는 런던 지하실에서 17번 반복 측정했어요.
결과는 지구의 밀도가 물의 5.48배라는 것이었어요.
현대 정밀 장비로 잰 값은 5.51배예요.
오차가 채 1%도 안 돼요.
이 측정은 사실상 만유인력 상수 G의 인류 최초 정밀 측정이었어요.
G는 뉴턴이 발견한 중력 법칙에 들어가는 숫자인데, 뉴턴 본인도 이 값을 몰랐어요.
그런데 캐번디시의 논문 제목은 이랬어요.
"지구의 밀도를 결정하는 실험."
야심을 드러내는 단어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캐번디시가 죽은 지 70년이 지나, 맥스웰은 그의 서랍에서 이미 발표된 줄 알았던 법칙들의 진짜 원본을 발견했어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은 전기와 자기가 하나의 힘임을 증명한 물리학자로, 아인슈타인이 가장 존경한 과학자 중 한 명이에요.
그가 1874년 케임브리지 대학 캐번디시 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면서, 오랫동안 방치됐던 상자들을 열기 시작했어요.
정리에만 5년이 걸렸어요.
그 안에 옴의 법칙이 있었어요.
"전류는 전압을 저항으로 나눈 것"이라는 공식인데, 독일 물리학자 게오르크 옴이 발표하기 약 50년 전에 이미 캐번디시의 노트에 적혀 있었어요.
쿨롱의 법칙, 즉 두 전하 사이의 힘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것도 쿨롱보다 먼저 발견해뒀어요.
물이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도요.
심지어 전류 세기를 비교할 때, 그는 자기 혀에 직접 전류를 흘려보내며 감각으로 기록했어요.
그런데 그 어느 것도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았어요.
1810년 세상을 떠날 때, 상자들은 데번셔 공작 가문 다락방에 그대로 남겨졌어요.
70년 동안, 아무도 열지 않았어요.
캐번디시가 정말 몰랐을까요.
자기 발견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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