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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696년, 요한 베르누이는 유럽 전체 수학자를 향해 풀 수 없을 문제를 던졌어요.
그가 정말로 노린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요.
문제는 최단강하곡선(brachistochrone) 이었어요.
두 점 사이를 가장 빨리 미끄러지는 곡선이 뭔지 찾아내는 거예요.
오늘로 치면, 놀이터 미끄럼틀을 어떤 모양으로 만들어야 가장 빨리 내려올 수 있는지 수학으로 증명하는 거예요.
베르누이는 6개월 시한을 걸었어요.
그리고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저 섬나라 영국인, 이건 못 풀 거야."
그 "섬나라 영국인"이 바로 아이작 뉴턴이었어요.
하지만 뉴턴은 익명으로, 단 하루 만에 정답을 보내왔어요.
베르누이는 그 편지를 받자마자 알아챘어요.
"발톱 자국만 봐도 사자인 줄 안다"고 직접 말했어요.
SNS에 풀 수 없는 퀴즈를 올려 누가 못 푸는지 보려 했는데, 한 익명 계정이 새벽에 정답을 올려버린 상황이에요.
챔피언을 끌어내리려고 만든 무대가, 오히려 챔피언의 존재를 더 크게 증명해버렸어요.

오늘 미적분 시험에 나오는 로피탈 정리를 만든 사람은 로피탈이 아니에요.
진짜 주인공은 요한 베르누이예요.
1694년, 베르누이는 프랑스 귀족 마르퀴 드 로피탈(Marquis de l'Hôpital) 과 비밀 계약을 맺었어요.
로피탈은 수학을 너무 좋아한 귀족이었어요.
직업 수학자는 아니지만 배우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었죠.
그는 베르누이에게 이렇게 제안했어요. "매년 300리브르를 줄게. 당신이 발견한 수학을 나에게 넘겨줘."
300리브르는 당시 웬만한 장인의 연봉 수준이에요.
베르누이는 계약서에 서명했어요.
1696년, 로피탈은 유럽 최초의 미적분 교과서 『무한소 해석』을 출간했어요.
그 안에는 0 나누기 0처럼 계산이 막히는 극한 문제를 푸는 핵심 공식이 들어 있었어요.
오늘날 전 세계 대학생들이 "로피탈 정리"라고 외우는 바로 그 공식이었어요.
하지만 책에 베르누이의 이름은 없었어요.
내가 만든 시스템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출시됐는데, 계약서 때문에 평생 항의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베르누이는 나중에 편지에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이미 역사는 굳어진 뒤였어요.

베르누이의 첫 번째 적은 외국 수학자가 아니라 자기 친형이었어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친형이 바로 그에게 미적분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어요.
형 야코프 베르누이는 동생 요한에게 라이프니츠의 새 수학인 미적분을 직접 전수했어요.
하지만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형제였기 때문에, 경쟁이 시작되자 선을 넘기 쉬웠어요.
결국 둘은 등주문제(isoperimetric problem) 를 두고 폭발했어요.
등주문제는 같은 둘레로 넓이를 최대로 만드는 곡선이 뭔지 찾는 문제예요.
오늘로 치면 정해진 울타리로 가장 넓은 땅을 둘러싸는 모양이 뭔지 수학으로 증명하는 거예요.
이걸 둘러싸고 형제는 학술지를 통해 서로를 공개적으로 비방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학술지는 오늘날 트위터와 비슷한 공론장이었어요.
"형의 풀이는 틀렸어요"라고 쓰면, 형이 "동생이 내 것을 훔쳤어요"라고 쓰고, 유럽 전체가 구경했어요.
화해 없이 30년이 흘렀고, 야코프는 1705년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요한은 그제야 형이 가지고 있던 바젤대학교 수학 교수직을 이어받았어요.
형의 죽음이 없었다면 그 자리는 영원히 요한에게 오지 않았을 거예요.
평생 가장 가까운 학문적 동료가 될 수 있던 사람이, 가장 잔인한 적으로 30년을 보낸 거예요.

1738년, 71세의 요한 베르누이는 자기 책 표지의 출판일을 6년 앞당겨 적었어요.
친아들의 업적을 빼앗기 위해서였어요.
그해 아들 다니엘 베르누이는 유체역학의 고전 『하이드로다이나미카(Hydrodynamica)』를 출간했어요.
유체역학이란 물이나 공기처럼 흐르는 것들의 운동을 수학으로 분석하는 학문이에요.
오늘날 비행기 날개 모양, 혈압 측정, 에어컨 설계 모두 이 책에서 출발한 원리를 써요.
4년 전인 1734년, 요한과 다니엘은 파리 과학아카데미 상을 공동 수상했어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아들과 같은 수상자가 됐다는 게 영광이 아니라 굴욕이었어요.
요한은 격분했고, 다니엘을 집에서 내쫓아버렸어요.
그리고 다니엘의 책이 나오자마자 요한은 자신의 책 『하이드라울리카(Hydraulica)』를 출간했어요.
그런데 표지에 출판 연도를 1732년으로 적었어요. 실제보다 6년 전이에요.
"나는 이미 6년 전에 이걸 했어. 내 아들 건 내 거야"라고 선언한 거예요.
부모가 자식의 SNS 글을 베끼고 게시 시각을 과거로 되돌려 "내가 먼저 썼다"고 우기는 상황이에요.
당시 학계는 이 조작을 금방 알아챘고, 요한의 명성은 크게 손상됐어요.
하지만 그보다 더 기묘한 건 이거예요. 요한 베르누이는 이미 역사에 남을 업적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왜 그는 아들의 것까지 가져야 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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