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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04년, 살아 있는 73세의 데데킨트는 자기 부고를 읽고 있었어요.
토이브너 수학 달력은 당시 유럽 수학자들이 매년 챙겨보던 연감이에요.
그 달력이 리하르트 데데킨트의 이름을 사망자 명단에 올렸는데, 날짜는 1899년 9월 4일이었어요.
문제는 그가 멀쩡히 살아 있었다는 거예요.
데데킨트는 출판사에 직접 편지를 썼어요.
날짜는 맞을지 모르지만, 연도는 확실히 틀렸다고요.
그날 자신은 친구 게오르크 칸토어와 즐겁게 저녁을 먹고 있었거든요.
오늘로 치면 SNS 타임라인에 자기 추모 글이 올라온 걸 발견하고 직접 댓글을 단 상황이에요.
그것도 "그날 저 친구랑 밥 먹었습니다"라고요.

유럽 최고의 대학들이 그를 불렀지만, 데데킨트는 고향의 작은 공업학교를 떠나지 않았어요.
데데킨트는 괴팅겐 대학에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마지막 박사 제자였어요.
가우스는 19세기 수학을 통째로 바꾼 인물이에요.
그 마지막 제자라는 건,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고 연구실에서 마지막으로 박사를 받은 셈이에요.
졸업 후 취리히, 할레 같은 명문 대학들에서 자리 제안이 들어왔어요.
하지만 데데킨트는 고향 브라운슈바이크의 작은 공업학교 폴리테크닉을 선택했어요.
그리고 거기서 50년을 강의했어요. 누이 율리와 함께, 조용히요.
하버드 박사가 고향 동네 학원에서 평생을 보내는 선택과 비슷해요.
주변에서 의아해했을 텐데, 데데킨트는 그 물음에 따로 답을 남기지 않았어요.

현대 수학의 기초 하나는, 한 강사가 자기 강의에서 막힌 그날 오후에 탄생했어요.
1858년 11월 24일, 데데킨트는 취리히에서 미적분 강의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자기 설명 앞에서 멈칫했어요.
"연속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엄밀한 답을 할 수가 없었거든요.
연속은 수학에서 "끊기지 않고 이어진다"는 개념이에요.
수직선이 빈틈 없이 채워져 있다는 뜻인데, 그걸 막상 증명하려니 말문이 막히는 거예요.
셰프가 요리하다가 "소금이 정확히 뭔지 정의해봐"라는 질문에 멈추는 것과 같아요.
그날, 데데킨트는 돌파구를 찾아냈어요.
유리수(1/2, 3/4처럼 분수로 표현되는 수)의 집합을 어떤 기준으로 딱 잘라 두 쪽으로 나눌 수 있어요.
그 잘리는 지점이 실수를 정의한다는 아이디어, 이걸 데데킨트 절단이라고 불러요.
수직선을 빈틈없이 채우는 방법을 '자르기'로 설명한 거예요.
강의 도중 자기 설명이 답답해서, 그 자리에서 개념을 새로 만들어버린 셈이에요.
그런데 이 아이디어를 논문으로 발표한 건 14년 뒤인 1872년이에요.

학계 전체가 칸토어를 미쳤다고 부르던 때, 그의 편지를 끝까지 받아준 사람은 데데킨트였어요.
게오르크 칸토어는 "무한에도 크기 차이가 있다"고 주장한 수학자예요.
자연수(1, 2, 3...)의 무한과 실수의 무한이 서로 다른 크기라는 이 주장, 당시 수학계에선 "신성모독"으로 불렸어요.
수학자 크로네커는 칸토어를 대놓고 "청소년 타락자"라고 불렀어요.
칸토어는 신경쇠약에 시달리며 학계에서 점점 고립됐어요.
그때 거의 유일하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론을 진지하게 논의한 사람이 데데킨트였어요.
데데킨트는 1888년 책 한 권을 냈어요.
제목은 〈수란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예요.
이 책에서 그는 칸토어의 무한 집합 개념을 정수론의 기초로 끌어들였어요.
학계가 외면하는 아이디어를 자기 책의 토대로 삼은 거예요.
칸토어의 이론은 20세기에 결국 현대 수학의 언어가 됐어요.
달력이 데데킨트를 1899년에 묻으려 했을 때, 그는 1904년에도 그 칸토어와 저녁을 먹고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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