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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라그랑주는 평생 단 한 번, 아버지의 파산을 행운이라 불렀어요.
그는 17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났어요.
본명은 주세페 로도비코 라그랑지아, 나중에 프랑스식으로 조제프루이 라그랑주로 바꾼 이름이에요.
아버지는 왕실 회계관이었는데, 무역 투기로 가산을 통째로 날렸어요.
그 바람에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변호사의 길이 막혔죠.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요.
17살의 라그랑주는 우연히 에드먼드 핼리의 수학 논문을 읽었어요.
핼리는 핼리혜성으로 유명한 영국 천문학자인데, 그가 쓴 수학 글 한 편이 라그랑주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버렸어요.
독학으로 수학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단 2년 만에 19살의 나이로 토리노 포병학교 교수 자리를 얻었어요.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부자였다면 수학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부모의 사업이 망해서 어쩔 수 없이 방향을 틀었는데, 그게 결국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된 거예요.

500쪽이 넘는 그의 역작에는 그림이 단 한 장도 없어요.
1788년 파리에서 출간된 『해석역학』 이야기예요.
뉴턴 이후 역학, 그러니까 물체의 운동과 힘을 다루는 물리학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한 책이에요.
뉴턴은 그림과 기하학으로 자연의 법칙을 증명했어요.
하지만 라그랑주는 그 모든 걸 기호와 수식만으로 다시 썼어요.
요리책에서 사진을 전부 빼고 분량과 시간만 적힌 표로 바꾼 것과 같아요.
그는 서문에 이렇게 적었어요.
"이 책에서 독자는 어떤 도형도 찾지 못할 것이다."
자랑스럽게 선언한 문장이에요. 그림 없이도 자연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도발이었죠.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라그랑주 방정식이에요.
오늘날 로봇공학, 항공우주, 게임 물리 엔진에 이르기까지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계산할 때 쓰는 방법이에요.
그림 한 장 없이 쓴 책이 이후 250년 동안 공학의 언어가 됐어요.

책이 출간된 다음 날부터 라그랑주는 그 책을 두 번 다시 펼치지 않았어요.
정확히는 2년 동안요.
인류 역학의 정점을 써낸 사람이, 정작 그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쳐다보기조차 싫어했어요.
번아웃이라는 말이 18세기에는 없었지만, 그가 겪은 건 정확히 그거였어요.
몇 년을 갈아 넣어 큰 프로젝트를 끝낸 다음 날, 결과물 폴더를 열기조차 싫은 그 느낌이요.
라그랑주는 수학에 대한 흥미를 완전히 잃고 형이상학, 화학, 식물학으로 도피했어요.
그런데 이 에피소드에서 흥미로운 건 그가 나약해서가 아니라는 거예요.
가장 완전한 것을 만든 사람이 가장 오래 멈춰 있었어요.
어쩌면 완성 뒤에 오는 공허함은, 완성의 크기에 정확히 비례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라부아지에의 머리가 떨어진 다음 날, 라그랑주는 한 문장을 남겼어요.
1794년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시기, 라그랑주의 친구 라부아지에가 단두대에서 처형됐어요.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발견하고 연소 현상을 설명한 근대 화학의 아버지예요.
라그랑주는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추방 위기에 몰렸어요.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어요.
당시 도량형 위원회의 핵심 인물이었던 덕분이에요. 도량형 위원회는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미터, 킬로그램 단위를 처음 만든 기관이에요.
그는 친구의 죽음 다음 날 이렇게 말했어요.
"저 머리를 자르는 데는 한순간이지만, 같은 머리를 다시 만드는 데는 100년도 부족할 것이다."
분노도, 공포도 아니었어요. 그냥 사실이었어요.
그 후 나폴레옹이 그를 백작으로 임명하며 "수학의 가장 높은 피라미드"라고 불렀어요.
아버지의 파산으로 시작해, 친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살아남은 사람이 남긴 수식들은 지금도 세상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있어요.
자기 책을 2년 동안 펼치지 못한 그 수학자가, 결국 가장 오래 읽히는 책을 썼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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