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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나중에 황제의 주치의가 될 사람이, 학생 시절엔 야밤에 교수대를 기웃거리는 도굴범이었어요.
1536년경, 지금의 벨기에 루뱅 대학교 의대생이던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는 스물한 살이었어요.
그는 도시 외곽 교수대에 매달린 처형된 죄수의 시체를 한밤중에 혼자 내려와 살을 발라내고 뼈만 추려 골격 표본을 만들었어요.
달빛 아래서, 혼자서요.
당시 인간 해부는 교회와 법이 철저히 통제했어요.
의학을 배운다는 건 교수가 낭독하는 1000년 전 라틴어 원고를 받아 적는 것이었어요.
실제 시체를 볼 기회는 1년에 한두 번 공개 해부가 전부였는데, 그 자리에서도 칼을 잡는 건 이발사였고 교수는 멀찌감치 앉아 원문만 읽었어요.
베살리우스는 이 방식이 납득되지 않았어요.
"책에 그려진 그림과 실제 몸이 정말 같은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그래서 도굴이 유일한 답이었어요.
그가 밤새 손수 추려낸 골격은, 나중에 인체를 1500년 만에 다시 기록하게 될 사람의 첫 번째 표본이 됐어요.

의학 역사에서 1543년은 지진이 두 번 일어난 해예요.
그해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천체회전론』을 출간했어요.
그리고 같은 해, 베살리우스는 스물여덟의 나이로 7권짜리 해부학 도해서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De humani corporis fabrica)를 세상에 내놨어요.
하늘의 권위와 몸의 권위가 같은 해에 동시에 무너진 거예요.
베살리우스가 정면으로 도전한 대상은 갈레노스였어요.
2세기 로마 황제의 주치의로, 그가 쓴 해부학 이론은 1500년 동안 의학의 교과서로 군림했어요.
"갈레노스가 틀렸다"는 말은 오늘날로 치면 "모든 의대 교과서가 틀렸어요"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어요.
그런데 베살리우스가 직접 해부를 반복하며 발견한 사실이 있었어요.
갈레노스는 인간 시신이 아닌 바바리원숭이와 돼지를 해부한 뒤, 그 결과를 인간 해부도라고 그대로 적었어요.
베살리우스가 Fabrica에서 지적한 갈레노스의 오류만 200건이 넘었어요.
1500년 동안 의사들이 외운 '인간의 몸'이, 사실은 원숭이 몸의 데이터였던 거예요.
환자 옆에서 펼쳐두던 해부도가 실은 전혀 다른 종의 내부 구조였어요.
그걸 처음 증명한 사람이 고작 스물여덟이었어요.

혁신적인 발견을 했으니 칭찬이 쏟아졌을 것 같죠. 실제로는 그 반대였어요.
Fabrica 출간 직후 베살리우스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의 궁정 의사로 발탁됐어요.
유럽 최고 권력자의 주치의 자리를 얻었지만, 갈레노스 추종자들의 공격도 동시에 쏟아졌어요.
그 중에서도 파리 시절 스승 야코부스 실비우스가 제자를 공개적으로 'Vesanus'라고 불렀어요.
라틴어로 '미친놈'이라는 뜻이에요.
1500년간 의학을 지배한 권위에 도전했다는 이유였어요.
비난이 그치지 않자, 베살리우스는 결국 결정을 하나 내렸어요.
미발표 원고와 연구 주석 노트를 자기 손으로 벽난로에 던져 넣었다고 전해져요.
의학사를 뒤바꾼 사람이, 자기 다음 연구를 자기 손으로 지운 거예요.
회사에서 혁신적인 보고서를 제출했더니 "선례를 무시한다"는 압박에 결국 본인이 후속 연구를 폐기하는 상황과 닮았어요.

평생 수천 구의 시신을 해부한 유럽 최고의 해부학자가, 정작 자신을 진료할 의사 한 명 없는 섬에서 죽었어요.
1564년,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궁정 의사로 일하던 베살리우스가 갑자기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선언했어요.
이유는 지금도 확실하지 않아요.
한 환자를 아직 살아있는 상태에서 부검했다는 혐의를 받아 종교재판소를 피해 떠났다는 소문이 있어요.
아니면 순수하게 신앙적 결단이었다는 설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베살리우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어요.
귀국길에 탄 배가 폭풍을 만나 난파됐어요.
그는 그리스 자킨토스 섬 해안에 홀로 표류했어요.
그리고 그 섬에서 마흔아홉 살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의 제자들이 훗날 붙인 호칭은 '해부학의 아버지'였어요.
시체를 훔쳐가며 원숭이 데이터를 인간 교과서로 대체한 사람, 무인도 해안에서 쓸쓸히 생을 마친 사람에게요.
베살리우스 본인이 이 호칭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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