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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유럽 수학사를 바꾼 한 사람의 이력서 첫 줄은 '대학교수'가 아니라 '회계 사무원'이었어요.
시몬 스테빈은 1548년 지금의 벨기에 브뤼헤에서 태어났어요.
청년 시절 그는 안트베르펜의 상인 사무소에서 장부를 들여다보며 분수를 계산하는 평범한 사무원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 30대 중반에 갑자기 직장을 그만뒀어요.
그리고 당시 네덜란드 최고의 학문 기관이었던 라이덴 대학에 입학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35살에 SKY 대학에 편입한 셈이에요.
라이덴 대학은 당시 갓 설립된 신생 학교였어요.
1575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버텨낸 네덜란드가 세운, 자유로운 사상의 요람이었어요.
스테빈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수학을 체계적으로 배웠어요.
늦깎이로 대학에 들어간 회계사가, 결국 유럽 과학의 흐름을 바꿔놓아요.
그 시작은 자신이 매일 씨름하던 문제에서 나왔어요.

우리가 아는 갈릴레오의 낙체 실험은, 사실 갈릴레오가 처음 한 게 아니에요.
학교에서 한 번쯤 들었을 거예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두 공을 떨어뜨렸더니, 동시에 땅에 닿았다."
그런데 그보다 4년 앞서, 같은 실험을 직접 수행하고 글로 기록한 사람이 있었어요.
1586년, 스테빈은 동료 얀 데 흐로트와 함께 네덜란드 델프트의 신교회 종탑으로 올라갔어요.
신교회는 지금도 남아 있는 고딕 양식의 높은 탑을 가진 교회예요.
그들은 무게가 열 배 차이 나는 두 개의 납공을 동시에 떨어뜨렸어요.
결과는 "거의 동시에 떨어졌다"였어요.
스테빈은 이 관찰을 책에 직접 써서 남겼어요.
"경험이 증명한다"라고요.
그렇다면 왜 갈릴레오가 더 유명할까요?
스테빈이 쓴 언어가 네덜란드어였거든요.
당시 유럽 학계의 공용어는 라틴어였어요.
네덜란드어로 쓴 책은 유럽 학자들이 읽지 않았어요.
갈릴레오의 이야기는 라틴어 학계에 퍼졌지만, 스테빈의 기록은 조용히 잊혔어요.
스테빈은 의도적으로 네덜란드어로 글을 썼어요.
"지식은 학자들만의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그 선택이, 결국 그의 이름을 역사 교과서 밖으로 밀어냈어요.

오늘 당신이 본 가격표의 '0.99'에는, 한 회계사가 평생을 들여 만든 점 하나가 박혀 있어요.
스테빈 이전의 유럽 상인들을 떠올려봐요.
지금 우리가 3.5라고 쓰는 수를, 그들은 "3과 2분의 1"로 표현했어요.
더 복잡하면 분수를 여러 개 이어 붙였는데, 단위마다 별도 환산 계산이 따라왔어요.
회계 사무소에서 매일 이 작업을 하던 스테빈은 알았어요.
"이건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 1585년, 그는 『De Thiende』라는 작은 책을 펴냈어요.
제목을 번역하면 '십분의 일에 관한 책'이에요.
이 책에서 스테빈은 제안했어요.
"소수점을 쓰면 어떨까?"
분수로만 표현하던 세계에 십진 소수 표기법이 들어온 거예요.
3과 4분의 1을 그냥 3.25라고 쓰면 됐어요.
단위마다 따로 환산하던 복잡한 계산이 단숨에 단순해졌어요.
스테빈은 이 책의 서문에서 누구에게 썼는지를 밝혔어요.
"이것은 천문학자, 측량사, 직물 상인, 포도주 측정인, 그리고 계산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왕과 철학자가 아니라 상인과 직공을 위한 수학이었어요.
그 점 하나가 400년 뒤, 모든 계산기와 컴퓨터의 기본 표기가 됐어요.
오늘날 전 세계가 쓰는 소수점은 스테빈의 발명이에요.

1600년 네덜란드의 한 해변에서, 말보다 빠른 마차가 모래 위를 달렸어요.
동력원은 바람이었고, 운전사는 수학자였어요.
스테빈은 학자로만 머물지 않았어요.
라이덴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네덜란드 독립 전쟁을 이끌던 마우리츠 공작의 군사 고문으로 일했어요.
마우리츠는 스테빈을 이론만 아는 교수가 아니라, 실용적인 문제를 함께 푸는 동반자로 여겼어요.
1600년 무렵, 스테빈은 마우리츠를 위해 특별한 것을 만들었어요.
네덜란드어로 '제일바헌', 직역하면 '돛 마차'예요.
오늘날로 치면 해변을 달리는 풍력 자동차예요.
두 대를 만들었어요.
한 대에 28명이 탔어요.
그리고 스헤브닝언 해변의 모래 위를 시속 3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달렸어요.
말을 탄 추격자들이 뒤를 쫓았어요.
하지만 따라잡지 못했어요.
마우리츠 공작은 배를 탄 것처럼 모래 위를 날아가는 마차에 크게 기뻐했다고 전해져요.
수학자가 물리학을 실험하고, 소수점을 발명하고, 풍력 차량을 설계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이름을 모르고 있어요.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 올랐다는 이야기는 알면서, 스테빈이 4년 앞서 델프트의 탑에서 같은 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요.
역사는 라틴어로 쓴 사람들의 것이었는지도 몰라요.
스테빈은 그냥 네덜란드어로 쓰고, 해변에서 마차를 달렸을 뿐이에요.
그 점 하나, 그 탑 하나가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데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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