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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갈레노스가 인체 내부를 처음 본 곳은 해부실이 아니라, 검투사 부상실이었어요.
서기 157년, 갈레노스는 고향 페르가몬(지금의 터키 베르가마)으로 돌아와 검투사 학교 전속 의사 자리를 맡았어요.
그런데 당시 로마법은 인체 해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어요.
의대생이 교과서만 달달 외우다가 응급실에서 처음 살아있는 환자를 만나는 것처럼, 갈레노스에게도 인체를 직접 볼 방법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검투사의 깊은 자상은 그에게 선물이었어요.
그는 상처를 "인체 내부를 들여다보는 창"이라 불렀어요.
피부가 벌어진 그 틈으로, 근육의 결이 어떻게 달리는지, 혈관이 어디서 나뉘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요.
결과는 놀라웠어요.
전임 의사가 4년간 16명의 검투사를 잃었는데, 갈레노스는 같은 기간 사망자를 5명으로 줄였어요.
그의 비법은 신비로운 약초가 아니라, 상처를 직접 보고 손으로 다뤄서 쌓은 경험이었어요.

갈레노스가 황제의 주치의가 된 비결은 의술이 아니라 쇼맨십이었어요.
그는 로마 광장에서 살아있는 돼지의 후두 신경을 잘라 비명 소리를 즉시 멈추게 하는 공개 시연을 벌였어요.
후두 신경은 성대와 연결된 신경인데, 그것을 끊으면 돼지가 발버둥을 치면서도 소리를 내지 못하게 돼요.
군중은 경악했고, 갈레노스는 그 자리에서 로마 최고의 의사로 이름을 날렸어요.
생각해보면 이건 오늘날 유튜브 라이브로 충격적인 실험을 중계해서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결국 169년, 갈레노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주치의 자리에 올랐어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한 황제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지혜다"라고 직접 저술까지 남긴 사람이에요.
그 후 코모두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까지 황제 4명을 연달아 모셨어요.
시골 출신 의사가 제국의 정점에 선 거예요.
그가 의학 지식보다 먼저 갖춘 것은 군중을 읽는 감각이었어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의사는, 환자가 가장 절실할 때 로마를 떠났어요.
166년, 안토니누스 역병이 로마를 덮쳤어요.
천연두로 추정되는 이 대유행병은 로마 인구의 10분의 1을 죽음으로 몰고 갔어요.
오늘날로 치면 서울 인구의 10%가 한 전염병에 쓰러지는 규모예요.
황실에서 부름이 왔을 때, 갈레노스는 고향 페르가몬으로 떠났어요.
황제가 직접 명령을 내린 후에야 그는 마지못해 로마로 돌아왔어요.
그는 훗날 이렇게 변명했어요. "동료 의사들의 시기와 모함 때문에 도저히 있을 수 없었거든."
하지만 정황은 명백히 도주였어요.
코로나 초기 환자가 폭증하던 때 의료진이 자리를 피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감정, 딱 그거예요.
그런데 갈레노스는 이 사건 이후에도 황제의 신임을 잃지 않았어요.

갈레노스의 해부학 책은 1500년간 정답이었어요. 그가 그린 것이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였다는 사실만 빼면.
갈레노스는 평생 인간 시신을 한 번도 직접 해부하지 못했어요.
로마법이 허락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는 바바리원숭이와 돼지를 해부해 인체 구조를 추론했어요.
결과적으로 오류가 쌓였어요.
자궁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다거나, 심장의 격벽에 작은 구멍이 있다거나 하는 내용이 버젓이 교과서에 실렸어요.
하지만 이 책들은 1543년까지 유럽 의학교의 절대 교과서로 군림했어요.
1543년, 베살리우스가 『인체구조론』을 펴냈어요.
인체를 직접 해부해 그린 최초의 정밀 해부서로, 갈레노스의 오류를 하나하나 반박한 책이에요.
그런데 당시 르네상스 의사들의 반응이 걸작이었어요.
그들은 "인체가 변한 것이지, 갈레노스가 틀렸을 리 없다"고 반박했어요.
눈앞의 시신보다 1300년 전 책을 믿은 거예요.
옛 백과사전이 "고래는 물고기"라고 써놓자 고래를 직접 해부하고도 "고래가 포유류일 리 없다, 백과사전이 맞다"고 우기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었어요.
갈레노스의 권위는 그가 죽은 뒤 더 강해졌어요.
그의 이름은 진리의 증거가 됐고, 그 이름을 의심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 됐어요.
1500년이 지나 마침내 누군가 "직접 보면 되잖아"라고 말하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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