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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라그랑주의 물리책 서문 첫 줄에는 당시로선 말도 안 되는 자랑이 하나 적혀 있어요.
"이 책에는 어떤 도형도 없다."
뉴턴이 1687년 펴낸 『프린키피아』는 근대 물리학의 출발점이 된 책이에요.
힘의 방향을 화살표로, 물체의 궤적을 곡선으로 그리는 방식, 즉 도형으로 운동을 설명하는 문법을 처음 확립한 책이거든요.
이후 모든 물리학책은 그 방식을 따랐어요.
그런데 라그랑주는 그 문법을 통째로 지워버렸어요.
요리책에 사진이 한 장도 없는데 "이게 훨씬 더 정확하다"고 선언하는 셰프를 떠올려보세요.
그가 1788년에 펴낸 『해석역학』(Mécanique analytique)이 딱 그런 책이에요.
역학이란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학문인데, 라그랑주는 그걸 도형 없이 방정식만으로 써냈어요.
그리고 그게 진짜로 더 강력했어요.
도형은 특정 순간의 모습만 보여줘요.
하지만 수식은 모든 상황에 통하는 법칙을 담아요.
오늘날 물리학자와 공학자가 계산하는 방식의 뿌리가 바로 이 책 한 권이에요.

라그랑주는 평생 아버지에게 한 가지를 감사했어요.
아버지가 가족의 재산을 모조리 날려버린 것이에요.
173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주세페 로도비코 라그랑지아예요.
집안은 원래 넉넉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투기로 재산을 몽땅 잃으면서 모든 게 바뀌었어요.
가난해진 덕에 라그랑주는 법학이 아니라 수학에 매달렸어요.
그리고 열아홉 살에 토리노 왕립포병학교 교수 자리에 올랐어요.
사관 장교를 양성하는 군사학교에서, 유럽에서 가장 젊은 수학 교수였거든요.
그가 직접 남긴 말이 있어요.
"아버지가 망하지 않았다면 나는 수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의 실패를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식이에요.
만약 아버지가 투기에 성공했다면, 라그랑주는 평범한 법률가로 살다 잊혔을지도 몰라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운 좋게 닥친 재앙이기도 하거든요.

프리드리히 2세는 자신을 유럽 최고의 왕이라 불렀어요.
그러니 곁에는 반드시 유럽 최고의 수학자가 있어야 했어요.
1766년,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대왕이 라그랑주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베를린 학술원으로 와달라는 초빙이었어요.
비어있는 자리는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쓰던 자리였거든요.
오일러는 18세기 최고의 수학자로, 그가 만든 공식과 기호가 지금도 모든 수학 교과서에 남아있어요.
당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고, 결국 베를린을 떠나야 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전설적인 수석 연구원이 은퇴하면서 그 자리를 채울 에이스를 스카우트한 셈이에요.
라그랑주는 그 자리에 앉아 20년을 베를린에 머물렀어요.
그 20년이 없었다면 『해석역학』도 없었을 거예요.
왕의 자존심이 만들어낸 인사 결정 하나가, 결국 물리학의 역사를 바꾼 책을 탄생시킨 거예요.

1794년 5월 8일, 라그랑주의 동료 라부아지에가 단두대로 끌려갔어요.
같은 위원회에 있던 라그랑주는 살아남았어요.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발견하고 근대 화학의 토대를 닦은 과학자예요.
프랑스 혁명의 공포정치, 즉 혁명 정부가 반혁명 세력을 처형으로 숙청하던 시기에, 과거에 세금 징수를 대리한 적 있다는 이유로 처형 대상이 됐어요.
유럽 최고의 화학자라는 사실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반면 라그랑주는 미터법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어요.
미터법 위원회는 혁명 정부가 전 세계 공통 단위를 만들기 위해 설치한 기구예요.
국가 핵심 사업의 책임자였기에 외국인 출신임에도 추방 명단에서 제외됐거든요.
공포정치 한가운데서 외국인 학자가 동료는 처형당하는 날 살아남은 거예요.
회사 정리해고 때 가장 친한 동료는 잘리고 자신만 남은 상황이에요.
라부아지에의 처형 소식을 듣고 라그랑주는 딱 한 마디를 남겼어요.
"저 머리를 베는 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했지만, 저런 머리는 백 년이 지나도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이 추모인지, 분노인지,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고백인지, 지금도 알 수 없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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