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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근대 계산법을 발명한 남자는 동네에서 마법사로 불렸어요.
1590년경, 존 네이피어는 에든버러 외곽 메르키스턴 성의 영주였어요.
성주면 체통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검은 망토를 즐겨 입고 흑마술 책을 탐독했죠.
어느 날 하인 중 누군가 물건을 훔쳤어요.
범인을 가려내야 했는데, 네이피어가 꺼낸 방법이 기가 막혔어요.
어두운 방 안에 검은 닭 한 마리를 넣어두고, 하인들에게 한 명씩 들어가 닭을 만지고 나오라고 시킨 거예요.
비결은 단순했어요.
닭 깃털에 미리 검댕을 잔뜩 발라뒀거든요.
당연히 닭을 만지면 손에 검댕이 묻어요.
그런데 정작 찝찝한 게 있던 사람은 안 만지고 나왔겠죠.
손이 깨끗한 사람이 범인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거짓말 탐지기를 연결했다"고 선언한 뒤 실제론 그냥 악수를 청하는 상황이에요.
도구가 아니라 도구에 대한 두려움이 자백을 끌어낸 거죠.
그런데 이 시대는 마녀 재판의 시대였어요.
검은 망토, 낯선 실험들, 알아들을 수 없는 계산 기호들.
동네 사람들 눈에 네이피어는 과학자가 아니라 흑마술사였어요.
정작 마녀사냥이 판치던 시절에, 미래의 수학 혁명을 준비하던 사람이 마녀로 의심받고 있었던 거예요.
네이피어가 평생 가장 자랑한 책은 로그표가 아니라 묵시록 해설서였어요.
1593년, 그는 『성 요한 묵시록의 평이한 발견』이라는 책을 냈어요.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 묵시록을 숫자로 분석해서 세상이 끝날 날짜를 계산한 책이죠.
그의 결론은 명확했어요.
"1688년에서 1700년 사이에 세상은 끝난다."
이 책은 대박이 났어요.
영국에서만 21쇄 이상 찍혔고, 프랑스어, 독일어, 네덜란드어로도 번역됐어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힌 네이피어의 책은 바로 이것이었어요.
비교를 해볼게요.
어떤 회사 CEO가 훌륭한 분기 보고서를 내놨어요.
하지만 정작 본인은 퇴근 후 혼자 쓰는 음모론 블로그가 평생의 업적이라고 굳게 믿는 거예요.
본인이 꼽는 대표작과 세상이 인정하는 대표작이 전혀 다른 상황이죠.
그에게 이 책은 사명이었어요.
종교 개혁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경의 비밀을 수학으로 풀어내는 일, 그게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거든요.
로그? 그건 종말이 오기 전에 틈틈이 다듬은 계산 도구였을 뿐이에요.
그가 로그를 만든 동기는 영광이 아니라 친구의 야근이었어요.
1600년대 초, 천문학자들의 삶은 고달팠어요.
행성 하나의 위치를 계산하려면 자릿수가 어마어마한 수의 곱셈을 손으로 며칠씩 해야 했거든요.
오늘날로 치면 계산기도, 엑셀도 없이 수만 자리 곱셈을 연필로 하는 셈이에요.
네이피어는 그 고통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곱셈을 덧셈으로 바꿀 수 없을까?"
곱셈은 어렵지만 덧셈은 쉬우니까요.
그 아이디어를 다듬는 데 약 20년이 걸렸어요.
1614년, 드디어 『기적의 로그법 기술』이 나왔어요.
어마어마한 곱셈을 단순한 덧셈으로 바꿔주는 수표를 담은 책이죠.
당시 최고의 천문학자 중 한 명이었던 케플러는 이 표를 받아들고 공개적으로 환호했어요.
그는 너무 고마워서 자기 책을 네이피어에게 헌정하기까지 했어요.
동료의 야근이 안쓰러워 만든 엑셀 매크로가 몇 년 뒤 산업 표준이 되는 상황이에요.
그 매크로를 만든 사람은 딱히 혁명을 꿈꾼 게 아니었겠죠.
그냥 옆 사람이 힘들어 보였던 거예요.
네이피어가 가장 사랑한 책은 후대가 가장 먼저 잊은 책이 됐어요.
1617년, 네이피어는 세상을 떴어요.
그 마지막 해에 그는 네이피어의 막대라는 도구도 발표했어요.
곱셈을 도와주는 뼛조각 모양의 막대로, 계산기의 먼 조상뻘이에요.
하지만 그는 평생의 대표작으로 끝까지 묵시록 해설서를 꼽았어요.
로그표도, 막대도 아니었죠.
그가 죽은 뒤, 아들 로버트가 아버지가 마무리 못한 로그의 이론적 구성 부분을 정리해 『Constructio』로 출간했어요.
그리고 역사는 결정을 내렸죠.
네이피어는 "로그의 아버지"로 교과서에 실렸어요.
그가 평생 사랑한 종말 예언서는 역사의 각주로 남았어요.
평생 시집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시인이 사후에는 생계를 위해 쓴 신문 칼럼 한 편만 교과서에 실리는 것처럼요.
자기 인생의 의미를 가장 잘못 짚은 사람이 정작 본인이었다는 이야기, 네이피어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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