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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디오판토스의 나이를 알고 싶으면, 먼저 방정식 하나를 풀어야 해요.
5~6세기경 그리스 시인들이 엮은 시집 『그리스 사화집』에 그의 묘비명이 실려 있어요.
묘비명은 이렇게 시작해요.
"내 인생의 6분의 1은 소년기였고, 12분의 1은 청년기였다.
7분의 1이 더 지난 뒤 결혼했고, 5년 뒤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나의 절반만 살았고, 아들이 죽고 4년 뒤 나도 세상을 떠났다."
이 문장들을 수식으로 옮기면 x = 84가 나와요.
묘비에 '향년 84세'라고 새기는 대신, '직접 풀어보라'는 퀴즈를 새겨둔 거예요.
평생 미지수를 다룬 수학자가, 자기 인생까지 변수 x로 남긴 셈이죠.

디오판토스 이전, 수학자들은 방정식을 풀지 않고 작문했어요.
예를 들어 오늘날 "2x + 3 = 7"로 쓰는 식을 그 시대 수학자들은 이렇게 적었어요.
"어떤 수에 그 수의 두 배를 더하고 3을 더하면 7이 된다."
문제를 풀기 전에 먼저 문장을 해독해야 하는 시대였어요.
그런데 3세기경, 지금의 이집트 북부에 위치한 학문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디오판토스가 『산학(Arithmetica)』을 썼어요.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지중해 세계의 학문 중심지였어요.
그는 이 책에서 미지수를 ς라는 기호로, 거듭제곱을 Δ°라는 기호로 표기하기 시작했어요.
요리 레시피를 줄글로만 쓰던 시대에, 처음으로 계량 기호를 도입한 사람이 등장한 거예요.
"밀가루를 손바닥 두 번 분량만큼"이라고 쓰던 걸 "밀가루 200g"으로 바꾼 것처럼요.
그래서 디오판토스를 오늘날 '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러요.
대수학은 미지수를 기호로 놓고 관계식을 세워 푸는 수학 분야예요.
숫자를 직접 계산하는 게 아니라, 조건만 주어진 미지수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방식이죠.
디오판토스가 그 추적의 언어를 처음 만들었어요.

페르마가 죽은 뒤, 사람들은 그의 책장이 아니라 그의 여백을 뒤졌어요.
1637년, 프랑스의 법관이자 아마추어 수학자였던 피에르 드 페르마는 디오판토스의 『산학』 라틴어 번역본을 읽고 있었어요.
그러다 한 문제 옆 여백에 라틴어로 짧은 메모를 남겼어요.
"나는 이것을 증명할 놀라운 방법을 발견했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 적지 못한다."
그가 주장한 명제는 이거예요.
n이 2보다 클 때, xⁿ + yⁿ = zⁿ 을 만족하는 양의 정수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피타고라스 정리처럼 세 정수가 딱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세제곱 이상에서는 절대 없다는 주장이에요.
페르마는 증명을 끝내 적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났어요.
친구가 교과서 모서리에 "나 답 알아, 근데 자리 없어서 못 적음"이라고 메모해놓고 사라진 셈이에요.
그 메모 하나가 이후 350년간 수학사 최대의 미해결 문제로 남았어요.

디오판토스가 시작한 문제는 1995년에야 끝났어요.
영국의 수학자 앤드루 와일즈는 열 살 때 도서관에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처음 읽었어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쓰인 문제였어요.
하지만 아직 아무도 풀지 못한 문제이기도 했어요.
그게 와일즈를 사로잡았어요.
1986년부터 그는 7년간 다락방에서 거의 비밀리에 연구했어요.
혹시 실패해도 조용히 물러설 수 있도록, 동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1993년 케임브리지 강연에서 처음 증명을 발표했지만, 곧 결함이 발견됐어요.
와일즈는 1년을 더 매달렸어요.
그리고 1995년, 완전한 증명이 마침내 세상에 나왔어요.
디오판토스가 3세기에 정수론의 씨앗을 뿌렸고, 페르마가 17세기에 여백에 한 줄을 남겼고, 와일즈가 20세기 끝자락에 그걸 증명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약 1700년이 걸린 거예요.
학교 선배가 칠판에 풀다 만 문제를, 후배들이 1700년 동안 이어 푼 셈이에요.
그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엔, 자기 묘비조차 방정식으로 남긴 수학자 한 명이 있어요.
그 사람 나이는 이미 구했잖아요.
혹시 풀이 과정을 직접 종이에 써보고 싶어지진 않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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