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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뉴턴의 진짜 관심사는 만유인력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1936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소더비 경매에서 뉴턴의 미공개 원고를 사들였는데, 그 안에서 나온 건 물리학 계산이 아니었어요.
약 100만 단어 분량의 연금술 실험 노트와 성경 연대 계산이 가득 차 있었어요.
30년 넘게 케임브리지 교수직을 지키는 동안, 뉴턴은 비밀 화로 앞에서 수은을 끓이며 현자의 돌을 찾고 있었어요.
현자의 돌이란 납이나 수은 같은 싸구려 금속을 금으로 바꿔준다고 믿어진 전설의 물질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30년째 몰래 점성술 연구를 해온 것과 비슷한 충격이에요.
중력의 법칙을 수식으로 정리한 그 사람이, 동시에 중세 연금술 필사본을 베끼며 불 앞에 앉아 있었어요.
케인스는 이 원고들을 보고 나서, 뉴턴이 사실은 "마지막 마법사"에 가까운 인물이었다는 글을 남겼어요.
뉴턴이 연금술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은, 그가 물리학에 바친 것에 전혀 뒤지지 않았어요.

학교가 문을 닫자, 인류의 역사가 다시 쓰였어요.
1665년 흑사병이 런던을 덮치면서 케임브리지 대학교가 폐쇄됐고, 고향 농가 울즈소프로 돌아간 23살 뉴턴은 18개월을 거의 혼자 보냈어요.
그 18개월 사이에 미적분, 빛의 스펙트럼 분해, 만유인력 가설이 모두 나왔어요.
이 세 가지는 각각 따로 떼어도 한 사람의 평생 업적이 되고도 남는 것들이에요.
코로나 격리 때 우리가 넷플릭스를 몇 편 정주행했는지 떠올리면, 그 밀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죠.
편지도 없고, 강의도 없고, 논쟁도 없는 18개월이었어요.
강제로 꺼버린 외부 소음이, 내부의 엔진을 켠 셈이에요.

뉴턴이 라이프니츠와의 논쟁에서 이긴 방법은 단순했어요.
판결문을 자기가 직접 쓴 거예요.
독일 수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발견한 인물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수학 시간에 쓰는 그 'dx' 표기법이 바로 라이프니츠 방식이에요.
라이프니츠가 미적분 우선권을 주장하자, 뉴턴은 당시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던 왕립학회에 조사위원회를 꾸렸어요.
왕립학회는 당시 영국 과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었어요.
1713년 발표된 "공정한 판결문"은 라이프니츠가 뉴턴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결론을 냈는데, 그 문서를 익명으로 쓴 사람이 뉴턴 본인이었어요.
자기 사건의 재판관, 검사, 서기를 모두 혼자 맡은 것과 같아요.
논쟁은 뉴턴이 죽을 때까지 계속됐고, 라이프니츠는 그보다 3년 먼저 세상을 떠났어요.

1696년, 뉴턴이 영국 화폐주조국 감독관에 임명됐을 때, 아무도 그가 진짜 일을 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어요.
화폐주조국은 나라에서 동전을 찍어내는 기관이에요.
명예직으로 여겨지던 자리였거든요.
하지만 뉴턴은 변장을 하고 런던의 허름한 술집과 뒷골목을 직접 돌아다니며 위조 동전 제작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어요.
노벨상 수상자가 은퇴 후 잠복 형사가 된 것 같은 장면이에요.
가장 유명한 표적은 윌리엄 챌로너였는데, 뉴턴을 역고발까지 시도할 만큼 대담한 인물이었어요.
뉴턴은 증인들을 직접 심문하고, 진술을 문서로 꼼꼼히 남겼어요.
그렇게 3년에 걸쳐 모은 증거 앞에서 챌로너는 1699년 교수형에 처해졌어요.
같은 손으로 《프린키피아》를 쓰고, 수은을 끓이고, 위조범을 사냥한 사람이 뉴턴이에요.
그가 남긴 100만 단어의 연금술 노트를 생각하면, 뉴턴이 평생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궁금해져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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