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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타르탈리아는 본명이 아니에요.
이탈리아어로 "말더듬이"라는 뜻이에요.
1512년, 프랑스군이 이탈리아 북부 도시 브레시아를 약탈했어요.
12살 소년 니콜로 폰타나는 어머니와 함께 성당으로 피신했지만, 병사의 칼이 그의 턱과 입천장을 갈라놓았어요.
의사를 부를 돈이 없었어요.
어머니는 개가 상처를 핥듯 아들의 찢긴 얼굴을 핥아 치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요.
그 상처는 평생 그의 발음을 뒤틀어놓았어요.
사람들은 그를 그냥 타르탈리아, "말더듬이"라고 불렀어요.
본명 니콜로 폰타나는 서서히 기록에서 사라졌고, 별명이 역사에 남았어요.

그가 라틴어 알파벳을 처음 본 곳은 학교가 아니라 공동묘지였어요.
집이 너무 가난해서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묘지에 가서 비석에 새겨진 글자를 숯 조각으로 따라 쓰며 문자를 익혔어요.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읽기를 배운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독학한 사내가 결국 베네치아의 수학 교사가 됐어요.
그리고 당시 유럽 최고의 난제로 꼽히던 3차방정식을 스스로 풀어냈어요.
3차방정식이 뭔지 몰라도 괜찮아요.
쉽게 말하면 x³이 들어간 방정식의 풀이 공식이에요.
2차방정식 풀이법은 수백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3차는 훨씬 복잡해서 당대 내로라하는 수학자들도 일반 공식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사내가 그 문제를 풀었어요.

1535년 베네치아의 한 광장에서 두 수학자가 30개의 방정식을 놓고 마주 섰어요.
상대는 안토니오 피오르였어요.
3차방정식 일부 풀이법을 먼저 발견한 수학자 델 페로의 제자로, 스승에게 물려받은 기법을 믿고 결투를 신청한 거예요.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서 수학은 우리가 아는 조용한 학문이 아니었어요.
수학자들은 광장에서 공개 결투를 벌였고, 군중이 모여 결과를 지켜봤어요.
패한 쪽은 교수직을 잃고 평판이 땅에 떨어졌어요.
오늘날로 치면 코딩 라이브 배틀에서 진 사람이 그 자리에서 일자리를 잃는 것과 같아요.
규칙은 단순했어요.
양쪽이 30문제씩 출제하고, 기한 내에 더 많이 푼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타르탈리아는 이틀 만에 30문제를 전부 풀었어요.
피오르는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했어요.
30 대 0.

오늘날 모든 수학 교과서에 실린 카르다노 공식은 카르다노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결투 이후 타르탈리아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퍼졌어요.
그러자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던 의사이자 수학자 지롤라모 카르다노가 접근해왔어요.
카르다노는 끈질기게 설득했어요.
결국 1539년, 타르탈리아는 조건 하나를 달고 공식을 알려줬어요.
"절대 출판하지 않겠다"는 맹세, 그것도 성서에 손을 얹고요.
카르다노는 맹세했어요.
그리고 6년 뒤인 1545년, 카르다노는 『아르스 마그나』를 출판했어요.
"위대한 술법"이라는 뜻의 이 책 안에 타르탈리아의 공식이 그대로 실려있었어요.
타르탈리아는 공개적으로 카르다노를 규탄했어요.
"맹세를 어긴 도둑"이라고 세상에 외쳤어요.
그러자 카르다노의 제자 루도비코 페라리가 스승을 대신해 결투를 선언했어요.
1548년, 타르탈리아와 페라리가 결투를 벌였어요.
이번엔 타르탈리아가 졌어요.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가난 속에서 숨졌어요.
묘지에서 알파벳을 배워 유럽 최고 난제를 풀어낸 그 공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교과서에 "카르다노 공식"이라는 이름으로 실려있어요.
타르탈리아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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