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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케플러가 처음 우주에서 본 것은 별이 아니라 도형이었어요.
1596년, 스물다섯 살의 케플러는 〈우주의 신비(Mysterium Cosmographicum)〉라는 책을 썼어요.
당시 알려진 행성은 여섯 개였는데, 케플러는 이 궤도들이 다섯 개의 정다면체 안에 꼭 들어간다고 주장했어요.
정다면체란 모든 면이 완전히 똑같은 정다각형으로만 이루어진 입체도형이에요.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큰 구 안에 도형, 도형 안에 구, 또 그 안에 도형을 차례로 끼워넣으면 행성 궤도가 딱 만들어진다는 논리였어요.
지금 들으면 황당하죠.
그런데 이 책은 당시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꽤 진지하게 받아들여졌고, 케플러는 이것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훗날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발견한 사람의 출발점이 이런 기하학적 신비주의였다는 게, 이 이야기의 핵심이에요.
케플러는 생계를 위해 점성술사로도 일하면서 귀족들의 운세를 봐줬어요.
그는 이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어요.
"점성술이라는 어리석은 딸이 지혜로운 어머니 천문학을 먹여 살린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케플러가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죽은 스승의 노트를 가져갔기 때문이에요.
튀코 브라헤는 당대 최고의 천문관측자였어요.
30년 넘게 매일 밤하늘을 기록하면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정밀한 행성 데이터를 쌓아온 덴마크 천문학자예요.
1601년, 튀코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어요.
케플러는 그의 조수였는데, 유족이 장례를 치르는 사이 화성 관측 노트를 챙겨 나왔어요.
박사과정 조교가 지도교수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마자, 교수가 30년간 모은 실험 기록을 들고 사라진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에요.
튀코의 유족은 격렬히 항의했어요.
하지만 케플러는 그 데이터를 끝내 돌려주지 않았어요.
그리고 바로 그 데이터가 케플러 법칙의 토대가 됐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천문 기록이, 합법적인 상속이 아니라 사실상 절도로 후대에 전해진 셈이에요.

우주를 바꾼 숫자는 단 8분이었어요.
여기서 8분은 시간이 아니라 각분(arcminute)이에요.
각분은 각도의 60분의 1에 해당하는 단위로, 밤하늘을 올려다봤을 때 눈으로는 절대 구분할 수 없는 아주 작은 차이예요.
튀코의 데이터를 가지고 케플러는 화성 궤도를 계산하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원을 그릴 거라고 믿었어요.
행성은 완벽한 원을 그린다는 것이, 당시 모든 천문학자의 상식이었거든요.
그런데 예측값이 관측값과 계속 8각분씩 어긋났어요.
케플러는 이 작은 차이를 무시하지 않았어요.
5년간 수백 번 계산을 반복했지만, 그 8분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어요.
결국 케플러는 원을 버렸어요.
행성은 원이 아닌 타원 궤도를 그린다는 것이 케플러 제1법칙이 됐어요.
평생 우주의 완벽함을 증명하려던 신비주의자가, 그 완벽함을 스스로 부수는 순간이었어요.

행성의 궤도를 푼 손으로, 케플러는 어머니의 변론서를 썼어요.
1615년, 70대였던 케플러의 어머니 카타리나가 마녀 혐의로 고발당했어요.
이웃에게 마법의 약을 먹였다는 것이 이유였어요.
당시 유럽에서 마녀재판은 드문 일이 아니었어요.
약초 지식이 있거나, 조금 기이하게 행동하거나, 그냥 마을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면 언제든 마녀로 몰릴 수 있었어요.
카타리나는 쇠사슬에 묶여 고문 도구 앞까지 끌려갔어요.
케플러는 그때 황실 수학자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국책연구원 수석 연구원 정도 되는, 꽤 높고 바쁜 자리예요.
그가 그 자리를 비우고 6년간 직접 증거를 모으고 수백 페이지의 변론서를 써서, 결국 어머니의 무죄를 받아냈어요.
행성 운동의 법칙을 밝힌 사람이 동시에 고향 법정에서 "우리 어머니는 마녀가 아닙니다"라고 변론해야 했던 시간이 6년이었어요.
케플러는 전쟁과 빈곤과 종교 박해가 뒤엉킨 시대를 살았어요.
우주에서는 완벽한 질서를 찾으면서도, 자신의 삶에서는 단 한 번도 반듯한 원을 그릴 수 없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더 열심히 계산했던 건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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