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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노벨 물리학상은 잘못 선 줄에서 시작됐어요.
1908년 맨체스터 대학 입학 등록일, 열일곱 살의 제임스 채드윅은 수학과 줄에 서려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물리학과 줄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문제는 채드윅이 워낙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창구 직원이 이미 서류를 펴고 "이름이요?"라고 물었을 때, 그는 "저 사실 수학과 오려 했는데요"라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냥 등록했어요. 물리학과로.
은행에서 줄을 잘못 섰는데 직원이 이미 서류를 쓰기 시작해서 차마 말 못 하고 그대로 업무를 본 적 있잖아요.
채드윅이 딱 그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그 어색함 하나가 20세기 물리학을 바꿨습니다.
물리학과에 들어간 채드윅은 곧 러더퍼드를 만납니다.
러더퍼드는 "원자는 텅 빈 공간이고 그 한가운데 딱딱한 핵이 있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처음 증명한 물리학자예요.
채드윅은 그 밑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4년 동안 마구간에서 잤고, 치약 튜브로 방사능을 쟀어요.
1914년, 채드윅은 베를린에서 한스 가이거 밑에서 연구 중이었습니다.
가이거는 방사능 검출기를 발명한 독일 물리학자로, 오늘날 '가이거 계수기'에 그 이름이 남아 있어요.
그런데 연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1차 세계대전이 터졌습니다.
채드윅은 영국 국적 민간인이라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적국 민간인으로 분류됐어요.
결국 루흘레벤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베를린 외곽 경마장을 개조한 시설이었어요.
4년이에요.
경마장 마구간을 숙소로 쓰면서 4년을 버텼습니다.
그런데 채드윅은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어요.
치약 튜브 안에 든 토륨 성분을 이용해 방사능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토륨은 방사성 원소로, 당시 치약에 소량 첨가되던 물질이에요.
독일 장교들에게 허가를 받아 마구간 한쪽에 간이 실험실을 꾸렸습니다.
어이없는 건 독일 과학자들이 실험 재료를 보내줬다는 거예요.
적국 수용소에서, 적국 과학자들이 보내준 재료로, 물리학 논문을 쓴 거예요.
감옥에 갇힌 요리사가 구내식당 재료로 레시피를 개발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돌아온 채드윅은 러더퍼드 곁으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스승이 12년 전에 던진 예언 앞에 다시 섰습니다.
답은 파리의 실험실에도, 베를린의 실험실에도 있었어요. 다만 아무도 그게 답인 줄 몰랐을 뿐이에요.
1920년, 러더퍼드는 "원자 안에 전하가 없는 입자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게 바로 중성자예요.
전자는 음전하, 양성자는 양전하를 띠는데 중성자는 전하가 없어요.
자석에 붙지 않는 쇳덩어리 같은 것입니다.
전기로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으니 검출 자체가 어려웠어요.
채드윅은 이걸 증명하기 위해 12년을 매달렸어요.
그 사이 1930년 독일의 발터 보테가, 1932년 파리의 이렌 졸리오퀴리와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 부부가 수수께끼의 방사선을 관찰했습니다.
그런데 둘 다 "이게 중성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채드윅은 졸리오퀴리 부부의 논문을 읽자마자 알아챘어요.
"이게 그거잖아. 내가 찾던 바로 그거."
그리고 단 2주 만에 파라핀을 이용한 실험으로 중성자 존재를 증명했습니다.
친구가 답을 말해줬는데도 문제를 못 풀다가, 혼자 고민하던 사람이 힌트 하나만 듣고 바로 푸는 상황 있잖아요.
채드윅이 딱 그랬어요.
1935년,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찾아낸 입자가 도시를 지우는 장면을 직접 봤어요.
중성자는 전하가 없기 때문에 원자핵에 전기적 반발 없이 그대로 충돌할 수 있어요.
그 성질이 핵분열을 일으키는 열쇠가 됐고, 원자폭탄의 원리가 거기서 나왔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채드윅은 영국의 원자폭탄 프로젝트인 튜브 앨로이스를 이끌었어요.
튜브 앨로이스는 영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 극비 계획이에요.
1943년에는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에 영국 대표로 합류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이 비밀리에 원자폭탄을 개발한 계획으로, 뉴멕시코 사막 한복판의 로스앨러모스에 연구소를 차렸어요.
채드윅은 그 연구소에 전면 접근이 허용된 유일한 영국 과학자였습니다.
오펜하이머, 페르미, 보어가 모인 그 방에 그도 있었어요.
1945년 7월, 채드윅은 트리니티 실험 현장에 있었습니다.
트리니티는 인류 최초의 핵실험이에요.
그는 거기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걸 직접 봤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살리려고 개발한 약이 전쟁터에서 독가스로 쓰이는 걸 보는 기분, 그게 채드윅의 느낌과 가장 가까울 거예요.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수년간 불면증에 시달렸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했습니다.
수용소 마구간에서 치약 튜브를 들고 방사능을 쟀던 남자가, 결국 인류 역사에서 가장 무거운 버섯구름 앞에 서게 됐어요.
그 12년의 집요함이 없었다면 중성자는 다른 누군가가 발견했겠죠.
하지만 그게 조금 늦어졌다면, 그 여름 버섯구름도 조금 늦어졌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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