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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세기 프랑스에서 귀족의 아들이 아니면 공병학교의 장교가 될 수 없었어요.
칼갈이의 아들 몽주는 단 한 장의 지도로 그 벽에 금을 냈어요.
1746년, 부르고뉴의 작은 도시 본(Beaune)에서 태어난 가스파르 몽주의 아버지는 행상을 하며 칼을 갈아주는 일을 했어요.
지금으로 치면 시장 골목 노점상 집안이죠.
그런 집 아이가 16세에 고향 마을 전체를 혼자 측량해서 정밀 지도를 그렸어요.
그 지도를 우연히 본 공병 장교가 눈을 의심했어요.
전문 측량사도 아닌 소년이 오차 없이 건물과 도로의 위치를 잡아낸 거예요.
장교는 즉시 몽주를 메지에르 왕립 공병학교(École Royale du Génie)에 추천했어요.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메지에르 공병학교는 귀족 자제만 장교 과정에 입학할 수 있는 학교였거든요.
결국 몽주는 장교 과정이 아닌 실무 제도공 과정으로만 입학이 허용됐어요.
이력서 대신 손으로 그린 프로젝트 하나만 들고 대기업 연구소 문을 두드린 고졸 청년과 똑같은 상황이에요.
200년을 이어온 신분 장벽에 지도 한 장이 구멍을 냈어요.
그리고 그 구멍에서 유럽 근대 공학의 역사가 시작됐어요.

몽주가 발견한 기하학은 너무 강력해서, 프랑스 군부는 이를 민간에 푸는 것을 30년간 금지했어요.
수학 이론이 탄약과 같은 등급의 군사 자산으로 분류됐다는 얘기예요.
메지에르 공병학교에 들어간 몽주는 요새 설계에서 골치 아픈 문제와 마주쳤어요.
포탄이 날아가는 궤적과 성벽의 사각지대를 계산하려면 복잡한 대수식을 며칠씩 풀어야 했거든요.
몽주는 이걸 입체를 평면으로 투영해서 그림으로 푸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이게 바로 화법기하학(Descriptive Geometry)이에요.
3D 공간의 물체를 2D 도면으로 정확하게 표현하는 기술이에요.
오늘날 건축 도면이나 기계 설계도를 그리는 방식이 바로 이 원리에서 출발했어요.
며칠 걸리던 계산이 몇 시간으로 줄었어요.
학교는 즉시 이 기법을 국가 기밀(secret d'État)로 분류했어요.
몽주 자신도 학생들에게 공개 강의로 가르치는 것이 금지됐어요.
엑셀 단축키 한 줄로 일주일치 업무를 한 시간에 끝냈는데, 회사가 "이건 기밀이니 후배한테도 알려주지 마"라고 입막음한 상황과 똑같아요.
그렇게 몽주는 자신이 만든 이론을 30년 동안 속으로만 알고 있어야 했어요.
공개 허락이 난 건 1794년, 혁명정부가 에콜 폴리테크니크(École Polytechnique)를 세우고 나서였어요.

왕의 처형 명령서에 서명한 손이, 5년 뒤에는 나폴레옹의 막사 옆에서 피라미드를 측량하고 있었어요.
이 한 문장에 몽주의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이 다 담겨 있어요.
1792년, 프랑스 대혁명의 열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몽주는 혁명정부의 해군·식민지 장관에 임명됐어요.
그리고 1793년 1월, 루이 16세의 처형을 집행한 정부의 핵심 각료 중 한 명이 됐어요.
뒤이어 닥친 공포정치를 간신히 피해 잠시 몸을 숨겼다가,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공동 설립하며 교육 현장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1796년, 이탈리아 원정에서 한 젊은 장군을 만났어요.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어요.
두 사람은 나이 차를 훌쩍 넘어 금방 각별해졌어요.
나폴레옹은 몽주를 누구보다 아끼는 친구로 여겼어요.
1798년 이집트 원정 때도 몽주를 곁에 데려갔어요.
그래서 몽주는 카이로에 세워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이집트 학사원(Institut d'Égypte)의 초대 원장이 됐어요.
왕의 목을 벤 혁명정부의 장관이, 5년 뒤 황제가 될 남자의 가장 가까운 과학 친구가 된 거예요.
대통령 탄핵을 집행한 장관이 다음 정권 실세 옆에서 사막을 측량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그 아이러니가 조금 더 실감나게 다가오죠.

몽주는 에콜 폴리테크니크를 세운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죽기 직전, 그 학교에서 이름조차 불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1814년, 나폴레옹이 실각하고 부르봉 왕정복고가 시작됐어요.
왕가를 몰아낸 혁명에 가담했던 사람들의 청산이 시작됐어요.
몽주는 과학원(Académie des Sciences) 회원 자격을 빼앗겼어요.
자신이 공동 설립한 에콜 폴리테크니크의 교수직도 박탈됐어요.
나폴레옹에게 받은 펠루즈 백작 작위를 포함한 모든 훈장도 사라졌어요.
회사를 창업한 사람이 경영권 분쟁 후 사내 위키와 연혁에서 이름까지 삭제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에요.
1818년, 몽주가 세상을 떠났어요.
정부는 장례식 참석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에콜 폴리테크니크 학생들은 다음 날 수업을 거부하고 몰래 묘지로 걸어갔어요.
선생님의 장례식에 가는 것조차 금지당하는 시대였는데, 학생들은 그래도 갔어요.
몽주의 유해가 파리의 국가 위인 묘역, 팡테옹(Panthéon)으로 이장된 건 1989년이에요.
그가 죽은 지 170년이 지난 뒤였어요.
나라가 지우려 해도 학생들이 기억했고, 170년이 지나서야 국가가 공식으로 돌아왔어요.
역사 교과서에서 몽주를 찾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몰라요.
너무 많은 시대에 걸쳐 살았던 사람은, 어느 정부도 편하게 기릴 수가 없거든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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