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60년대 영국 외과의들에게 피 묻은 가운은 훈장이었어요.
더러울수록 실력 있는 의사로 여겨졌거든요.
기름 얼룩투성이 앞치마를 경력의 증거로 자랑하는 요리사의 주방을 떠올려보면 딱 맞아요.
1860년대 유럽 병원이 그랬어요.
외과의들은 가운을 거의 빨지 않았고, 핏자국이 겹겹이 쌓일수록 경험 많은 의사로 인정받았어요.
그 결과는 처참했어요.
수술을 받은 환자 중 약 절반이 병원 괴저로 사망했어요.
병원 괴저란 수술 부위에 생기는 치명적인 감염이에요. 상처가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며 환자를 죽이는 병이죠.
더 기괴한 건 이걸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수술 후 곪는 건 자연스러운 치유 과정"이라고 의사들은 믿었어요.
하지만 사실 더러운 손과 씻지 않은 도구가 환자를 죽이고 있었어요.
의사의 자부심 그 자체가 환자의 사망 원인이었어요.
이 기괴한 상황을 뒤집은 사람이 조셉 리스터예요.
1865년 여름, 리스터는 소년의 부러진 다리에 하수도 소독제를 부었어요.
그리고 소년은 살아났어요.
그해 8월 12일, 글래스고 왕립병원에 마차 바퀴에 치인 11살 소년 제임스 그린리스가 실려 왔어요.
정강이뼈가 살을 뚫고 바깥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어요.
당시 기준으로 거의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부상이었어요.
리스터는 석탄산에 적신 붕대를 상처에 감았어요.
석탄산이란 당시 도시 하수구의 악취를 없애는 데 쓰이던 공업용 소독제예요.
욕실 곰팡이 제거제를 자기 팔 상처에 바르는 것처럼, 당시로선 상상조차 못 할 시도였어요.
이 아이디어는 프랑스 과학자 루이 파스퇴르에게서 나왔어요.
파스퇴르는 공기 중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부패와 감염을 일으킨다는 세균설을 주장하고 있었어요.
리스터는 "세균을 죽이면 감염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답을 하수구 소독제에서 찾은 거예요.
6주 뒤, 소년은 감염 없이 걸어서 병원을 나갔어요.
시민들이 혐오하던 하수구 약품이 인간의 상처를 고쳐낸 거예요.
하지만 리스터가 이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영국 의학계의 반응은 냉소 그 이상이었어요.
1871년 9월, 빅토리아 여왕의 몸 안으로 들어간 칼은 영국 의학계가 10년간 조롱하던 남자의 것이었어요.
에든버러와 런던의 유명 외과의들은 리스터를 비웃었어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균이 사람을 죽인다고? 말도 안 돼."
공개 석상에서 사이비 취급을 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빅토리아 여왕의 겨드랑이에 사과만 한 농양이 생겼어요.
농양이란 몸 안에 고름이 가득 찬 덩어리예요. 방치하면 독소가 온몸으로 퍼져 목숨을 앗아가요.
결국 왕실은 자신들이 비웃던 그 남자를 불렀어요.
리스터는 석탄산 분무기로 수술실 공기를 소독한 뒤 여왕을 집도했어요.
그리고 수술 도중 조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나는 여왕 몸에 칼을 꽂은 유일한 남자야."
동료들이 사이비라고 비웃던 기술을 대영제국의 군주가 자기 몸에 선택한 거예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후 리스터의 무균 수술법은 영국 전역으로 퍼지기 시작했어요.
조롱이 인정으로 바뀌는 데는 여왕 한 명이면 충분했어요.
오늘날 약국 선반을 차지한 리스테린은 리스터가 만든 적도, 허락한 적도 없는 제품이에요.
1879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의사 조셉 로렌스가 리스터의 업적을 기려 석탄산 기반 수술용 소독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Listerine'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리스터에게 허락을 구했냐고요? 아니요.
이후 제약사 램버트가 이 제품을 사들였고, 1920년대 광고를 통해 수술용 소독제를 구강청결제로 탈바꿈시켰어요.
리스터는 이 사업에 참여한 적이 없고, 로열티도 한 푼 받지 않았어요.
심지어 자기 이름이 상업 광고에 쓰이는 것 자체를 꺼렸다고 해요.
내 이름을 딴 글로벌 브랜드가 슈퍼마켓 선반에 쌓여 있는데 그 병을 열어본 적조차 없는 상황이에요.
리스터가 세상을 떠난 건 1912년이었어요.
오늘도 수백만 명이 그의 이름으로 된 물로 입을 헹구고 있지만, 그가 평생 원했던 건 구강청결제가 아니라 의사들이 손을 씻는 세상이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