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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 제국에서 가장 진보한 수학책을 쓴 사람에게는 직장도, 후원자도, 고정된 집도 없었어요.
주세걸(朱世傑, 1249~1314경)은 대학자 집안 출신도, 관직을 가진 관료도 아니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정규직 없이 도시를 옮겨다니며 수학을 가르치는 프리랜서 강사였죠.
그가 20여 년간 원나라 강남과 화북을 떠돌며 한 일은 딱 하나였어요.
산학(算學), 즉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었어요.
제자들에게 계산 방법을 알려주며 생계를 이어가는 과외 선생이었죠.
1299년, 그는 입문서 '산학계몽(算學啓蒙)'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산학계몽은 수학을 처음 배우는 학생을 위해 쓴 교재예요.
그런데 이 책을 쓴 사람이 대학 교수도, 왕실 수학자도 아닌 떠돌이 강사였다는 게 이미 흥미롭죠.
4년 뒤, 그는 훨씬 더 대담한 작업을 마무리해요.
오늘날 고등학생이 배우는 '파스칼의 삼각형'은 파스칼이 태어나기 320년 전, 중국 한 방랑 학자의 책에 이미 그려져 있었어요.
1303년, 주세걸은 '사원옥감(四元玉鑑)'을 완성해요.
제목을 풀면 "네 개 미지수의 옥거울"이라는 뜻이에요.
당시 수학자들이 미지수 하나를 다루는 방정식도 어렵게 여기던 시절, 그는 天(하늘)·地(땅)·人(사람)·物(사물) 네 개의 미지수를 동시에 다루는 체계를 만들었어요.
이걸 사원술(四元術)이라고 불러요.
여러 개의 방정식을 동시에 푸는 연립방정식 방법인데, 오늘날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연립방정식의 훨씬 고급 버전이라고 보면 돼요.
변수가 네 개인 복잡한 방정식을 체계적으로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13세기에 개발한 거예요.
그리고 이 책 안에는 '고법칠승방도(古法七乘方圖)'라는 삼각형 모양의 숫자 표가 실려 있어요.
1, 7, 21, 35… 이런 식으로 숫자를 삼각형으로 배열해, 복잡한 식을 전개할 때 계수를 바로 읽어낼 수 있게 한 표예요.
오늘날 우리가 '파스칼의 삼각형'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표예요.
파스칼이 같은 삼각형을 정리한 건 1654년이에요.
주세걸보다 351년 뒤의 일이죠.
"파스칼의 삼각형"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단순해요. 유럽인들이 주세걸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에요.
주세걸의 수학은 너무 어려워서 잊힌 게 아니에요.
주판이 더 빠르다는 이유로 버려진 거예요.
원나라가 무너지고 명나라가 들어서면서 세상이 바뀌었어요.
상업이 발달하고 시장이 커지면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수학도 달라졌어요.
복잡한 대수식 계산이 아니라, 빠르고 간단한 사칙연산이었죠.
그 자리를 주판(珠算)이 차지했어요.
주판은 빠르고, 배우기 쉽고, 즉시 결과가 나와요.
반면 사원술은 배우는 데만도 수년이 걸리는 고난도 방법이었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상황이에요.
고급 공학용 소프트웨어가 있는데도 "엑셀이 더 편하다"며 아무도 쓰지 않다가, 결국 그 소프트웨어 사용법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된 거예요.
명나라 중엽인 15~16세기가 되자, '사원옥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중국 학자가 거의 남지 않았어요.
인류 수학사의 절정이던 책이, 그 책을 낳은 나라에서 "쓸모없다"고 버려진 거예요.
하지만 바다 건너 작은 나라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주세걸을 구한 것은 조국 중국이 아니라, 그의 책을 교과서로 삼은 조선이었어요.
조선은 세종 대부터 '산학계몽'을 산학 관원 시험의 필수 교재로 지정했어요.
산학 관원은 오늘날 정부 기관의 회계·통계 담당자에 해당해요.
그 시험을 보려면 반드시 주세걸의 책을 읽어야 했어요.
수요가 생기자 조선은 책을 직접 찍어냈어요.
1433년, 경주부(慶州府)에서 목판을 새로 새겨 산학계몽을 간행했어요.
한국의 인쇄소가 중국 수학책의 명맥을 이어간 거예요.
그 결과 500년이 지난 19세기 초,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청나라의 학자 완원(阮元)이 주세걸의 책을 연구하고 싶었는데, 정작 중국 안에서는 원본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결국 그가 '산학계몽'을 구한 곳은 조선이었어요.
조선본을 역수입해 중국에서 재간행하게 된 거예요.
'사원옥감'도 마찬가지로, 완원이 민간에 떠돌던 필사본을 겨우 발견해 살려냈어요.
중국 수학의 정점을 다음 세대에 전달한 건 결국 중국이 아니라 조선이었어요.
원본이 없어진 한국 가수의 데뷔 앨범을 일본 팬이 카세트테이프로 보관해두었다가 30년 뒤 역수입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어떤 지식이 살아남을지를 결정하는 건 그 지식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붙들고 있던 사람이에요.
주세걸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 전역을 떠돌며 가르쳤지만, 그를 기억해준 건 결국 조선이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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