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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도 철학이라 하면 흔히 모든 것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다바차리야는 그 상식을 정면으로 부수러 온 사람이었어요.
1238년 남인도 우두피에서 태어난 마다바가 맞닥뜨린 건 당시 힌두 철학의 절대 주류, 샹카라의 불이일원론이었어요.
불이일원론이란 '신과 나는 본래 하나'라는 주장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마치 "우리는 모두 한 바다에서 온 물결"이라고 노래하는 분위기처럼, 인도 철학의 지배적인 정서였죠.
마다바는 이 분위기 한복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선언했어요.
"아니요. 당신과 신은 영원히 남남입니다."
그가 세운 사상이 이원론(Dvaita), 즉 신과 영혼은 영원히 분리되어 있다는 가르침이에요.
이게 당시 인도에서 얼마나 파격적이었냐면, 오늘날 "사랑은 하나가 되는 것"이라는 통념에 대고 "아니요, 사랑해도 둘은 둘입니다"라고 고집하는 것과 비슷한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이 반박을 인도인 스스로가 꺼냈다는 게, 이 이야기의 첫 번째 반전이에요.
마다바는 철학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바람신 바유의 화신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한 사람이었어요.
바유는 힌두교에서 생명의 바람을 관장하는 신으로, 힘과 속도의 상징이에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는 자신의 전생이 두 명이었다고 했어요.
첫 번째는 서사시 라마야나에서 산을 들어 올리던 원숭이 영웅 하누만, 두 번째는 마하바라타에서 철퇴를 휘두르던 거인 전사 비마예요.
지금으로 치면 어느 대학 철학 교수가 강단에서 "참고로 저는 헤라클레스의 세 번째 환생입니다"라고 자기소개하는 격이죠.
흥미로운 건 제자들이 이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거예요.
기록에 따르면 마다바는 실제로 체구가 거대하고 힘이 장사였다고 해요.
철학 논증보다 몸으로 먼저 설득한 셈이에요.
힌두교는 보통 모두가 결국 해탈한다고 가르쳐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수백만 번 윤회를 거치든, 결국 모든 영혼은 신에게로 돌아간다는 낙관론이 기본이에요.
마다바는 이 낙관을 거부한, 거의 유일한 힌두 철학자였어요.
그는 영혼을 세 등급으로 나누는 삼분설을 세웠어요.
해탈에 이를 수 있는 영혼, 영원히 윤회를 반복하는 영혼, 그리고 영원히 어둠에 떨어지는 영혼인 타모-요기야예요.
타모-요기야란 "어둠에 적합한 자"라는 뜻으로, 구원의 가능성 자체가 없는 영혼을 가리켜요.
오늘날로 치면, 출석만 하면 통과하는 수업에서 교수가 "하지만 이 중 몇몇은 영원히 F를 받을 것입니다"라고 선언하는 상황이에요.
힌두교는 물론 불교, 자이나교를 통틀어 '영원한 지옥'을 정식 교리로 세운 사상가는 마다바가 거의 유일해요.
인도인이 서양 종교보다 먼저 영벌의 논리를 만들어낸 셈이에요.
이 주장이 논쟁적이었냐고요?
당연히 엄청난 논쟁을 불렀어요.
그런데 마다바는 물러서는 대신, 더 정교한 논증으로 밀고 나갔어요.
마다바의 죽음은 기록되지 않았어요.
그는 79세에 걸어서 설산으로 들어갔고, 제자들은 꽃비 속에서 그의 뒷모습을 잃었어요.
전승에 따르면 1317년 무렵, 마다바는 우두피의 제자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마쳤어요.
그리고 바드리나트, 히말라야 깊숙이 자리한 비슈누 숭배의 성지를 향해 조용히 걸음을 내디뎠어요.
제자들이 뒤따랐지만, 꽃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그의 모습은 눈 속으로 사라졌어요.
이후 아무도 그의 유해를 보지 못했어요.
여기서 이 이야기의 가장 큰 역설이 드러나요.
평생 "신과 영혼은 영원히 분리되어 있다"고 가르친 사람이, 정작 자신은 신에게로 돌아간 자로 제자들에게 기억된다는 거예요.
평생 "집에 돌아갈 방법은 없다"고 말하던 노인이 어느 날 조용히 문을 열고 집 쪽으로 걸어간 셈이에요.
이원론을 세운 철학자의 마지막이 합일로 읽힌다는 것, 마다바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가르침을 반박하며 사라진 걸까요, 아니면 그 분리 자체가 신에게로 가는 길이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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