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32년 어느 날, 낙양의 조정 대신들은 청동 항아리 하나를 비웃고 있었어요.
용의 입에서 구슬이 떨어졌는데, 아무도 땅이 흔들리는 걸 느끼지 못했거든요.
"고장난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사기였던 거지."
대신들은 이렇게 수군댔어요.
그런데 며칠 뒤, 500km 떨어진 농서(隴西), 지금의 간쑤성 방향에서 전령이 달려왔어요.
"지진이 났습니다."
구슬이 떨어진 방향, 서쪽이었어요.
오늘로 치면 긴급재난문자가 울렸는데 아무것도 안 느껴져서 "오작동이지"라고 무시했다가, 사흘 뒤 뉴스에서 먼 도시의 지진 소식을 듣는 상황이에요.
세계 최초의 지진계가 작동한 바로 그 순간, 그 장치는 '쓸모없는 장난감' 취급을 받고 있었던 거예요.
지진계를 만들기 전, 장형은 시인이었어요.
그것도 시 한 편을 10년 동안 다듬은 고집스러운 시인이었죠.
장형(張衡, 78~139)은 남양 출신으로, 20대에 수도 낙양으로 올라와 '이경부(二京賦)'를 쓰는 데만 꼬박 10년을 썼어요.
이경부는 옛 수도 장안과 새 수도 낙양, 두 도시를 비교·묘사한 장편 운문으로 후한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혀요.
10년간 소설 한 편에만 매달린 베스트셀러 작가가 마흔에 갑자기 NASA 수석 천문학자로 임명되는 상황이랑 비슷해요.
그가 과학으로 방향을 튼 것은 조정에서 '태사령(太史令)'으로 임명된 40세 이후였거든요.
태사령이란 천문·역법·역사 기록을 총괄하던 관직으로, 오늘날 기상청장과 국립도서관장을 겸하는 자리라고 보면 돼요.
동양사에서 시인과 과학자를 한 몸에 가진 사람은 드물어요.
장형은 그 드문 예외였죠.
장치는 놀라울 만큼 단순했어요.
청동 항아리에 용 여덟 마리, 두꺼비 여덟 마리.
지진이 오면 단 한 방향의 용만 구슬을 뱉었어요.
지동의(地動儀)는 지름 약 2m의 청동 항아리예요.
외벽에는 8방위를 각각 가리키는 용 8마리가 입에 구슬을 물고 늘어서 있었고, 바로 아래엔 두꺼비 8마리가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어요.
핵심은 항아리 안에 있었어요.
'도주(都柱)'라는 관성 추가 내부에 매달려 있었는데, 지하철 손잡이처럼 평소엔 가만있다가 흔들리면 한쪽으로 쏠리는 구조예요.
지진이 오면 도주가 진동이 온 방향으로 기울고, 그쪽 용의 구슬만 두꺼비 입에 '쩡' 하고 떨어졌죠.
"지진이 왔다"만이 아니라 "어느 방향에서 왔다"까지 알려주는 장치였어요.
현대 지진계의 원리인 관성 추와 방향 표시의 조합과 본질적으로 같아요.
그런데 현대 지진계의 상용화는 1880년대예요. 장형의 지동의보다 약 1,750년이 늦죠.
장형이 죽자 지동의도 함께 사라졌어요.
이 청동 항아리가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무려 1,700년 뒤였어요.
장형의 업적은 지동의에서 끝나지 않아요.
수력으로 돌아가는 혼천의(渾天儀)도 만들었는데, 혼천의는 하늘 전체를 공 모양으로 본뜬 모형 장치로 별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기구예요.
원주율을 √10, 즉 약 3.162로 계산했고, 달이 스스로 빛나지 않고 햇빛을 반사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설명했어요.
별 2,500여 개를 목록화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장형은 환관들의 정치적 견제 속에 만년에 지방으로 좌천당했어요.
139년 그가 사망하고, 얼마 뒤 후한이 무너지면서 지동의 실물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남은 건 '후한서(後漢書)'의 짧은 기록뿐이었어요. 후한서는 후한 왕조의 역사를 정리한 공식 사서예요.
다빈치의 헬리콥터 스케치가 500년 뒤에야 재조명된 것처럼, 장형도 너무 이른 천재였어요.
1875년 영국 학자 존 밀른과 20세기 중국 학자 왕전둬가 후한서 기록만을 바탕으로 복원 모형을 만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박물관에서 보는 지동의는 실물이 아니라, 1,700년 뒤의 재건축이에요.
그 사실을 알고서도 유리 너머의 청동 항아리를 바라보면, 한 가지 질문이 떠올라요.
1,750년을 앞서간 발명이 사라진 건 능력이 부족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 시대가 받아들이지 못해서였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