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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20세기에 가장 많이 인용된 수학 삽화가는 정작 고등학교 수학을 낙제한 학생이었어요.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M.C. Escher)는 1898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어요.
손재주가 좋아 건축 설계를 배우러 하를럼 건축·장식예술학교에 들어갔지만, 성적이 바닥이었어요.
결국 2년 만에 전공을 바꿔 그래픽 아트로 방향을 틀었죠.
그냥 나쁜 게 아니라 특히 수학이 심각하게 나빴어요.
학교에서 낙제 도장을 찍은 그 과목이, 훗날 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하학 예술가로 만들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 했어요.
수십 년이 지나 수학자들은 그의 판화를 학술 논문에 삽화로 실었어요.
"이 그림 하나가 위상수학 교과서 열 페이지보다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죠.
시험지에 빨간 줄이 가득했던 그 학생이, 결국 수학자들의 학회에 초청받는 예술가가 되었어요.
한 판화가의 대표작은, 이슬람 왕궁의 벽 앞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선 2주에서 시작되었어요.
1922년, 에셔는 스페인 그라나다에 있는 알함브라 궁전을 처음 방문했어요.
알함브라는 14세기 이슬람 왕조 나스르가 지은 무어 양식의 궁전으로, 벽과 바닥 곳곳이 기하학 타일 패턴으로 빈틈없이 덮여 있어요.
그는 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화장실 바닥 타일을 보다가 "왜 이 도형을 붙여놓으면 빈 자리가 안 생기지?" 하고 의아해진 경험 있으시죠.
에셔는 그 질문 앞에서 멈춰 섰어요.
이슬람 예술가들이 구현한 이 방식을 수학 용어로 테셀레이션이라고 해요.
같은 모양 조각을 반복해서 늘어놓아 평면을 틈 없이 채우는 도형 배열인데, 퍼즐 조각을 정확히 맞춰 빈 공간 없이 채우는 것과 같은 원리예요.
1936년, 에셔는 아내와 함께 다시 알함브라를 찾았어요.
이번엔 14일 동안 벽면 타일 패턴을 꼼꼼히 베꼈어요.
하지만 이슬람 예술가들이 종교 원칙상 동물이나 사람을 그릴 수 없었던 자리에, 에셔는 새, 물고기, 도마뱀을 집어넣었어요.
기독교 판화가의 대표작이, 역설적으로 '도상 금지'를 지킨 이슬람 예술로부터 태어난 거예요.
타일이 새가 되고, 새가 물고기가 되는 살아 있는 테셀레이션이 여기서 시작됐어요.
훗날 노벨상을 받게 될 물리학자가, 수학 낙제생 화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어요.
1954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국제 수학자 대회에서, 영국 유전학자 라이오넬 펜로즈와 그의 아들 로저 펜로즈가 에셔의 전시 작품을 마주쳤어요.
로저 펜로즈는 훗날 블랙홀 연구로 202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사람이에요.
두 사람은 에셔의 작품에 자극받아 직접 '불가능 도형'을 고안했어요.
펜로즈 삼각형이라고 불리는 이 도형은, 평면 그림 안에서는 완벽하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절대 만들 수 없는 입체예요.
세 모서리 각각을 보면 분명히 직각인데, 세 개를 이어붙이면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삼각형이 완성돼요.
1958년, 펜로즈 부자는 이 도형을 논문으로 발표하면서 에셔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어요.
에셔는 이 편지를 받고 2년 뒤 '오르내리기'(Ascending and Descending, 1960)를 완성해요.
수도사들이 계단을 끝없이 오르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 바퀴를 돌면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오는 불가능한 건물이에요.
그리고 이듬해 '폭포'(Waterfall, 1961)를 발표했어요.
물이 아래로 떨어지며 물레방아를 돌리고, 그 물이 다시 꼭대기로 올라가 또 떨어지는 영구 기관처럼 보이는 그림이에요.
화가가 수학자에게 영감을 주고, 수학자가 그것을 발전시켜 화가에게 돌려준, 역사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왕복이었어요.
세계 최고의 록 밴드가 표지를 부탁했을 때, 70세 판화가는 이름부터 똑바로 부르라고 답했어요.
1969년, 롤링스톤스의 보컬 믹 재거가 에셔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신보 앨범 '스루 더 패스트, 달링리'의 커버 디자인을 맡아달라는 의뢰였어요.
에셔의 답장은 짧고 단호했어요.
"재거 씨에게 전해주시오, 나는 그에게 마우리츠가 아니라 M.C. 에셔 씨요."
퍼스트네임으로 불린 것부터 지적한 거예요.
그 시절 에셔는 수학자나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전설이었지만, 정작 미술계에서는 "삽화가일 뿐"이라며 무시당하는 처지였어요.
그런데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 아트의 유행을 타고 그의 작품이 록 음악 팬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어요.
에셔는 그 유행이 썩 달갑지 않았어요.
소셜미디어에서 갑자기 팔로워가 폭발했을 때 "이 사람들이 진짜 내 걸 이해하는 건가?" 싶어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느낌 있잖아요.
에셔가 딱 그랬어요.
자신을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소비하려는 모든 시도에 그는 일관되게 거절로 답했어요.
결국 '삽화가일 뿐'이라던 사람이 수학 학회에선 스타 연사였고, 록스타에겐 우상이었고, 노벨상 수상자에겐 영감의 원천이었어요.
그 자신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그냥 '판화가 M.C. 에셔'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름 하나에서 인생 전체가 보이는 사람이라는 게,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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