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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58년 6월, 찰스 다윈은 손에 든 원고를 보다가 숨이 막혔어요.
자신이 20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론이, 얼굴도 모르는 사내의 손글씨로 고스란히 적혀 있었거든요.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은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였어요.
인도네시아 테르나테섬에서 표본을 팔아 생계를 꾸리던 무명의 박물학자였죠.
테르나테는 향신료 무역으로 유명한 작은 섬인데, 월리스는 거기서 말라리아 열병에 시달리며 자연선택 이론을 종이 위에 정리했어요.
자연선택이란, 환경에 더 잘 맞는 개체가 살아남아 자손을 더 많이 남긴다는 개념이에요.
오늘날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많이 알려진 바로 그 메커니즘이에요.
다윈도 그 이론을 20년째 다듬으며 출판을 미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무명 박물학자에게서 거의 동일한 원고가 날아온 거예요.
혼자 수년째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사람이, 해외에서 날아온 이메일 한 통을 열었더니 자기 아이디어가 그대로 적혀 있는 상황이에요.
월리스가 구명보트에 올랐을 때, 4년간 잡아 말린 수천 마리의 곤충은 대서양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어요.
때는 1852년이에요.
월리스는 아마존에서 4년 동안 곤충, 조류, 포유류 표본을 모은 뒤 영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어요.
그런데 대서양 한복판에서 배에 불이 났고, 구명보트에서 10일을 버티다 겨우 구조됐어요.
월리스는 귀족 집안 출신이 아니었어요.
아버지가 측량 기사였고, 월리스도 학교를 일찍 그만두고 기술직으로 일했어요.
그에게 표본 판매는 취미가 아니라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어요.
4년치 수입원이 불타 없어진 거예요.
하지만 월리스는 돌아서지 않았어요.
구조된 직후 다음 원정지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결국 8년간 말레이 제도로 떠났어요.
말레이 제도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일대인데, 월리스는 거기서 수만 점의 표본을 수집했어요.
그 탐험 중에, 말라리아 열병 속에서, 진화론을 썼어요.
월리스가 편지의 운명을 알게 된 건, 이미 모든 결정이 끝난 뒤였어요.
1858년 7월 1일, 런던 린네학회에서 발표가 있었어요.
린네학회는 당시 영국 최고의 자연사 학술 단체예요.
그날 두 편의 논문이 함께 낭독됐는데, 하나는 월리스의 원고였고, 다른 하나는 다윈이 급히 꺼낸 1844년 초고였어요.
월리스는 그 자리에 없었어요.
아직 말레이 제도에 있었고, 발표에 동의한다는 연락을 받은 적도 없었어요.
다윈의 친구들, 지질학자 라이엘과 식물학자 후커가 이 공동 발표 방식을 결정한 거예요.
1년 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단독 저자로 출판했어요.
종의 기원은 오늘날까지 생물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혀요.
다윈은 세계적 명성을 얻었고, 월리스는 평생 가난 속에 살았어요.
그런데 월리스의 태도가 더 놀라워요.
그는 이 처리에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어요.
오히려 말년에 자신의 주저 제목을 『다윈주의(Darwinism)』라고 붙여서, 스스로 다윈의 이름을 앞세웠어요.
내가 낸 기획안이 동료 이름으로 먼저 발표됐는데, 몇 년 뒤 내가 직접 그 동료 이름을 책 표지에 써서 출판하는 셈이에요.
진화론을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반대자가 아니라, 공동 발견자 월리스였어요.
말년의 월리스는 심령술에 깊이 빠졌어요.
심령술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낸다는 강령회나 영매를 믿는 것인데, 당시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유행했지만 과학계에서는 웃음거리로 여겨졌어요.
월리스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개 선언을 했어요.
인간의 정신과 도덕 감각만큼은 자연선택으로 설명할 수 없으며, 더 높은 지성의 개입이 있다는 주장이었어요.
자신이 공동 발견한 진화론의 한계를, 스스로 공개적으로 선언한 거예요.
자신이 만든 서비스의 가장 큰 약점을 공개 발표장에서 창업자 본인이 먼저 말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에요.
다윈은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당신이 당신과 나의 자식을 죽이고 있어."
함께 만들어낸 이론을, 공동 창시자가 스스로 부수고 있다는 탄식이었어요.
하지만 월리스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과학계의 비웃음을 감수하면서, 죽을 때까지 자기 주장을 지켰어요.
월리스라는 사람은 참 이상해요.
표본을 모두 잃고도 다시 짐을 쌌고, 자기 이름이 빠진 발표에도 침묵했고, 자신이 만든 이론의 한계를 스스로 선언했어요.
그 열병 속에서 쓴 몇 장의 편지가,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지우는 데도 쓰였고, 동시에 그 이름을 남기는 데도 쓰였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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