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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첸슝 우는 2년 뒤에 돌아올 계획이었어요.
그는 61년 동안 고향에 발 한 번 못 디뎠어요.
1936년, 스물네 살의 첸슝 우는 상하이 부두에서 배에 올랐어요.
미국 미시간 대학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으러 가는 길이었어요.
부두에 선 아버지에게 "2년 뒤에 돌아올게요"라고 말하고 손을 흔들었어요.
첸슝 우의 아버지 우중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어요.
중국 최초 여자학교 중 하나인 밍더학교를 세운 사람이에요.
딸에게 "여자라서 공부 못 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아버지였어요.
그런데 배가 떠난 다음 해,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략했어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냉전이 대륙을 갈라놓았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영영 막혀버렸어요.
결국 첸슝 우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도,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곁에 있지 못했어요.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 나갔다가 돌아갈 길이 막혀버린 것과 같은 상황이에요.
그 "2년"은 결국 61년이 됐어요.

1944년, 원자폭탄 개발의 핵심 원자로가 멈췄을 때 페르미가 꺼내든 것은 첸슝 우의 박사논문이었어요.
맨해튼 프로젝트는 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극비리에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군사 사업이에요.
그 프로젝트의 핵심 시설인 핸포드 원자로가 가동 직후 원인 불명으로 멈춰버렸어요.
원자로를 설계한 엔리코 페르미,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든 물리학자조차 이유를 몰랐어요.
답은 몇 해 전 버클리에서 한 중국 여성이 쓴 박사논문에 있었어요.
제논-135, 핵분열 반응의 부산물로 나오는 기체가 중성자를 흡수해 연쇄반응을 막는다는 현상이에요.
첸슝 우가 이미 논문에서 설명해 놓은 내용이었어요.
당신이 대학원에서 쓴 논문 한 편이 5년 뒤 국가 최고 기밀 프로젝트를 살리는 상황이에요.
그게 첸슝 우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미국은 적국에서 온 중국 여성을 맨해튼 프로젝트에 불러들였어요.

1957년 1월, 첸슝 우의 컬럼비아 실험실에서 300년 된 물리학의 상식이 무너졌어요.
그 전까지 물리학자들이 굳게 믿어온 것이 하나 있었어요.
패리티 보존, 자연의 모든 현상은 거울에 비친 모습과 동일하게 작동한다는 법칙이에요.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든 왼손으로 던지든 물리 법칙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믿음이었어요.
1956년, 이론물리학자 리정다오와 양전닝이 이 믿음에 의문을 제기했어요.
원자핵이 붕괴할 때도 이 대칭이 정말 유지될까, 두 사람은 가설을 세웠어요.
하지만 어떻게 실험할지는 몰랐어요.
첸슝 우가 방법을 찾아냈어요.
코발트-60을 절대영도 근처인 0.01K(영하 약 273도)까지 냉각해 원자핵을 모두 같은 방향으로 정렬시켰어요.
그 상태에서 베타 입자, 그러니까 붕괴 시 방출되는 전자가 어느 방향으로 더 많이 나오는지 측정했어요.
결과는 충격적이었어요.
입자는 위아래로 같은 양이 나오지 않았어요.
"우주는 왼손잡이다"라는 뜻이었어요.
학교에서 수십 년 동안 가르쳐온 내용이 하루아침에 틀린 게 됐어요.
그리고 그 이듬해, 노벨 위원회가 움직였어요.

노벨 위원회는 가설을 증명한 사람 대신 가설을 제안한 사람 둘에게만 상을 주었어요.
1957년 노벨 물리학상은 리정다오와 양전닝이 받았어요.
실험을 직접 설계하고 수행한 첸슝 우의 이름은 없었어요.
이론은 증명되기 전까지는 가설일 뿐인데, 그 가설을 사실로 만든 사람을 수상자 명단에서 뺀 거예요.
프로젝트의 핵심 기능을 구현한 엔지니어는 빠지고, 아이디어만 낸 매니저 두 명이 무대에서 상을 받는 상황이에요.
그게 1957년 스톡홀름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에요.
첸슝 우는 훗날 편지에 이렇게 썼어요.
"이런 사소한 일이 나를 상처 입혀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아프다."
노벨상을 받지 못한 것을 "사소한 일"이라 불러야 했던 그 마음을, 아마 그 자신만 온전히 알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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