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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인슈타인은 그녀를 "우리의 마리 퀴리"라 불렀어요.
그녀의 일터는 지하 목공실이었습니다.
1907년, 리제 마이트너는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화학연구소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연구소 측에서 통보했죠.
"2층 실험실은 여자 출입 금지입니다."
회사가 "여성은 본관 출입 금지"라며 창고에서 일하라고 한 것과 같아요.
오늘날이라면 뉴스에 날 일이지만, 당시엔 규정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트너는 지하 목공실을 개조한 공간에서 5년간, 돈도 받지 않고 연구했어요.
결국 아인슈타인이 그녀에게 별명을 붙였습니다.
마리 퀴리는 노벨상을 두 번 받은 물리학자예요.
아인슈타인이 누군가에게 그런 별명을 붙인다면, 그 무게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겠죠.

1938년 7월 13일 밤, 마이트너는 베를린을 떠났어요.
손에는 동료가 쥐여준 반지 하나, 주머니엔 10마르크뿐이었습니다.
그 해 3월,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했어요.
오스트리아 국적의 유대인이었던 마이트너는 그 순간 법적 보호막을 잃었습니다.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이 보호막을 잃는다는 건, 언제 체포될지 모른다는 뜻이었어요.
30년간 쌓은 연구 노트와 실험 기록, 그 모든 것을 두고 국경을 넘어야 했어요.
동료 오토 한이 마지막 순간에 쥐여준 것은 자신의 어머니 다이아몬드 반지였습니다.
혹시 국경에서 뇌물이 필요할 때를 대비한 거였어요.
30년 커리어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스웨덴 눈밭을 걷던 그녀는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종이에 적었어요.
우라늄이 쪼개질 때 나오는 에너지, 2억 전자볼트.
망명 후 스웨덴에 자리를 잡은 마이트너에게 1938년 12월, 베를린에서 편지 하나가 왔어요.
오토 한이 실험 결과를 보낸 거였는데, 우라늄에 중성자를 쏘았더니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트너에게 물어본 거예요.
크리스마스였어요.
마이트너는 조카 오토 프리슈, 그도 물리학자였는데, 그와 함께 쿵엘브 근교의 눈 덮인 숲을 걸었습니다.
쿵엘브는 스톡홀름 근처의 조용한 소도시예요.
걷다가 그루터기에 앉아, 마이트너는 계산을 시작했어요.
꺼낸 공식은 아인슈타인의 E=mc²,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의 제곱이라는 수식이었습니다.
우라늄 핵이 쪼개질 때 아주 미세하게 사라지는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된다는 것, 그 결과가 2억 전자볼트였어요.
이 현상에 마이트너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핵분열(fission), 원자핵이 두 개로 쪼개지는 현상이라는 뜻이에요.
이것이 이후 원자폭탄의 원리가 됩니다.

1944년 노벨상 발표가 나오던 날, 마이트너는 이미 로스앨러모스의 초청을 거절한 뒤였어요.
이유는 한 문장이었습니다.
"나는 폭탄과는 아무 상관 없다."
그해 노벨 화학상은 오토 한 단독 수상이었어요.
핵분열을 이론으로 설명하고 이름까지 붙인 마이트너의 기여는, 수상 이유서에서 지워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상을 다툴 법적 위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나라도 없는 처지였어요.
같은 시기 로스앨러모스 연구소가 그녀를 초청했어요.
로스앨러모스는 미국 뉴멕시코주의 비밀 시설, 원자폭탄을 개발하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본거지였습니다.
하지만 마이트너는 거절했어요.
뒤늦게 세상은 그녀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1966년 미국 정부는 핵물리학 분야 최고 영예인 페르미상을 수여했어요.
그리고 1997년, 원소 주기율표 109번에는 그녀의 이름이 새겨졌습니다. 마이트네륨(Mt).
노벨상 수상 명단은 도서관 책 속에 있지만, 원소 기호는 지금도 전 세계 모든 화학 교실 벽에 붙어 있어요.
"나는 폭탄과는 아무 상관 없다"고 말한 사람의 이름이 말이죠.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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