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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스턴트 라면을 발명한 사람은 식품 전문가가 아니었어요.
파산한 48세 남자가 뒷마당 창고에서 만들었어요.
안도 모모후쿠는 원래 신용조합 이사장이었어요.
그런데 1957년, 사업이 통째로 무너지며 전 재산을 잃었어요.
이게 인생에서 두 번째 파산이었어요.
집도, 저축도, 모두 사라진 채 48세에 다시 0이 됐어요.
하지만 안도는 자택 뒷마당 4평짜리 나무 창고에 작업장을 차렸어요.
그리고 1년 동안 하루에 4시간만 자며 라면 개발에 매달렸어요.
세계 최대 라면 제국의 창업자는 요리사도, 식품회사 간부도 아니었어요.
두 번이나 파산한 48세 중년 남자였어요.
그 사람이 뒷마당 창고에서 불을 켜고 냄비를 끓이며 1년을 버텼어요.
그 창고에서 나온 발명품이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1년에 1200억 개 넘게 먹는 음식이에요.

해답은 연구소가 아니라 부엌에 있었어요.
아내가 튀기던 덴푸라가 세계를 바꿨어요.
덴푸라는 밀가루 반죽을 입혀 기름에 튀기는 일본식 튀김 요리예요.
안도가 1년 내내 풀지 못한 문제는 딱 하나였어요.
"어떻게 하면 면을 오래 보관하면서도 뜨거운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을까?"
냉동도 아니고, 단순 건조도 아닌,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저녁 반찬으로 덴푸라를 만들고 있었어요.
밀가루 반죽이 뜨거운 기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수분이 폭발적으로 빠져나가며 반죽에 미세한 구멍이 생겼어요.
안도는 그 장면을 보다가 멈췄어요.
"이거야. 면을 기름에 튀기면 돼."
젖은 스펀지를 뜨거운 기름에 담그면 수분이 다 빠지고 구멍만 남아요.
나중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그 구멍으로 물이 스며들며 면이 다시 살아나요.
안도는 이 방법을 순간 유열 건조법이라고 불렀어요.
면을 기름에 튀겨 수분을 날리고, 나중에 뜨거운 물로 되살리는 방식이에요.
연구비도, 실험실도, 공동 연구자도 없었어요.
혼자 창고에서 부엌 위의 답을 찾아낸 거예요.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가 된 라면은 처음엔 사치품에 가까웠어요.
1958년 8월, 치킨라면이 세상에 나왔어요.
한 봉지에 35엔이었는데, 당시 우동 한 그릇이 6엔이었으니 약 6배나 비쌌어요.
심지어 일반 생라면(25엔)보다도 비쌌어요.
편의점 2000원짜리 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 분식집 국수보다 비쌌다면 어땠을까요.
유통업자들은 "누가 이런 비싼 걸 사먹냐"며 외면했어요.
하지만 안도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바꿨어요.
백화점 시식 코너에서 직접 뜨거운 물을 부어 면이 퍼지는 장면을 보여줬어요.
3분이 지나자 면이 부풀어 오르고 닭고기 향이 가득 찼어요.
그 장면을 본 주부들이 "어? 이게 된다고?" 하며 손을 뻗었어요.
결국 출시 1년 만에 1300만 봉지가 팔렸어요.
지금은 가장 싼 한 끼의 상징이 된 라면이, 처음엔 비싸다는 이유로 외면받았다는 게 아이러니예요.

안도 모모후쿠는 96세로 세상을 떴어요.
그 전날 점심도, 그 전전날 점심도, 그는 치킨라면을 먹었어요.
치킨라면 이후에도 안도는 멈추지 않았어요.
1971년엔 컵누들을 발명했어요.
뚜껑을 열고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컵라면이었어요.
2005년엔 중력이 없는 우주에서도 먹을 수 있는 스페이스 램을 만들었어요.
우주 비행사를 위해 설계된 라면이었는데, 48세에 창고에서 시작한 사람이 94세에 우주 라면을 발명한 거예요.
스티브 잡스가 죽는 날까지 아이폰만 썼다고 상상하면 비슷한 느낌이에요.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마지막 날까지 매일 먹었어요.
자기 발명이 옳았다는 걸 매일 몸으로 확인하면서요.
그가 세상을 떠나자 일본에서는 6500명이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창고에서 하루 4시간씩 자며 면을 튀기던 그 남자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서요.
오늘 편의점에서 라면 하나를 집을 때, 그 봉지 안에 48세 파산자의 1년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맛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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