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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장 르 롱 달랑베르라는 이름은 사람 이름이 아니에요.
그가 발견된 교회 이름이에요.
1717년 11월 16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북쪽에 있던 작은 세례당, 생장르롱 교회 계단에 갓난아기가 놓여 있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편의점 앞 CCTV에 찍힌 영아 유기 뉴스 같은 사건이에요.
그런데 18세기 파리에서는 교회가 그 역할을 했거든요.
친어머니는 클로딘 드 텐생이었어요.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살롱을 운영하던 귀족 출신 작가로, 문인과 철학자들이 그녀의 집에 모여들었어요.
친아버지는 포병 장교 데투슈였지만, 두 사람 모두 신생아를 외면했어요.
이름도, 부모도, 성씨도 없는 바구니 하나.
유럽 최고의 지성 중 한 명의 인생이 거기서 시작됐다는 게 아이러니예요.
아이는 자신을 발견해준 교회의 이름을 그대로 받아 세례를 받았어요.

파리에서 가장 명석한 수학자는 유리장이 집 다락방에서 논문을 썼어요.
교회는 아기를 동네 유리장이 장인의 아내, 마담 루소에게 맡겼어요.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그녀는 달랑베르를 자식처럼 키웠어요.
달랑베르는 수학에서 압도적인 재능을 보였어요.
22세에 파리 왕립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됐고, 파동이 퍼지는 방식을 수식으로 표현한 파동방정식의 일반해를 발표했어요.
뉴턴 역학을 더 단순하고 강력하게 재정리한 '달랑베르 원리'도 그의 작업이에요.
그런데 충격적인 건 따로 있어요.
그는 48세가 될 때까지 그 유리장이 집 다락방에서 계속 살며 연구했어요.
유명 대학 교수가 평생 옥탑방 할머니네에서 연구한 셈이에요.

달랑베르의 대답은 한 줄이었어요.
"당신은 내 계모일 뿐이오."
그가 과학아카데미 회원이 되고 유럽 전역에 이름이 알려지자, 28년간 그를 외면했던 친어머니 텐생 부인이 나타났어요.
"내 아들"이라며 화려한 사교계로 받아들이려 했어요.
귀족 가문에 편입될 수 있는 기회였어요.
하지만 달랑베르는 거절했어요.
"유리장이의 아내가 내 진짜 어머니요."
그는 양어머니 마담 루소가 돌아가실 때까지 그 집을 떠나지 않았어요.
뒤늦게 나타난 친부모 앞에서 누구를 진짜 가족이라 부를 것인지, 오늘 우리도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잖아요.
달랑베르는 망설이지 않았어요.
사회적 상승의 사다리를, 자기 손으로 걷어찼어요.

버려진 아기의 이름이 유럽의 모든 지식을 분류한 책 표지에 인쇄됐어요.
1751년, 달랑베르는 철학자 드니 디드로와 함께 백과전서(Encyclopédie)를 공동 편집해요.
백과전서란 28권에 걸쳐 18세기의 모든 지식을 한데 모은 책으로, 지금으로 치면 위키피디아를 처음 만든 초대 편집장 격이에요.
그냥 정보를 긁어모은 게 아니에요.
달랑베르가 직접 쓴 '서론(Discours préliminaire)'은 단순한 머리말이 아니었어요.
인간 지식 전체를 수학, 자연과학, 인문학으로 새롭게 분류한 선언문이었어요.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통째로 다시 정의한 거예요.
프랑스 교회와 왕실은 이 책을 위험하다고 봤어요.
종교와 권위를 흔들 수 있는 지식이 대중에게 퍼지는 걸 막으려 했거든요.
그래서 달랑베르와 디드로는 끊임없는 검열과 싸우며 수십 년간 이 작업을 밀어붙였어요.
결국 이름도 성도 없이 교회 계단에 놓였던 아기가, 유럽 전체의 지식 목록을 새로 쓰는 사람이 됐어요.
그 아이가 받은 이름은 교회 이름이었고, 그 아이가 남긴 이름은 역사가 됐어요.
어쩌면 달랑베르의 삶 자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걸어간 방향이 사람을 만든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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