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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류가 천연두를 정복한 첫 실험의 주인공은 8살 소년이에요.
1796년 5월 14일, 영국 시골 의사 에드워드 제너는 정원사의 아들 제임스 핍스의 팔을 살짝 긁고 고름을 주입했어요.
소가 걸리는 가벼운 수두, 우두(cowpox)에서 뽑은 고름이에요.
6주 뒤 제너는 소년에게 실제 천연두(smallpox) 고름을 일부러 묻혔어요.
천연두는 당시 열 명 중 세 명이 목숨을 잃는 병이에요.
그런데 제임스는 멀쩡히 살아남았어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 실험은 아동학대에 가까워요.
내 아이가 이웃집 의사의 실험 첫 번째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면, 그 장면의 무게가 다르게 느껴질 거예요.
하지만 그 선택이 없었다면 인류는 훨씬 오랫동안 천연두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을 거예요.

왕립학회 회원들이 몰랐던 것을 시골 목장의 여자들이 먼저 알고 있었어요.
제너는 영국 글로스터셔 지방에서 평생 시골 진료를 한 의사예요.
그가 실마리를 찾은 건 학술 논문이 아니라 낙농가 여성들 사이에서 퍼지던 말이었어요.
"소 젖 짜는 여자들은 천연두에 안 걸려."
천연두가 유행할 때마다 젖소를 다루는 여성들의 얼굴에는 곰보 자국이 없었어요.
제너는 이 민간 상식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질문을 바꿨죠. "왜 그럴까?"에서 "이걸 이용할 수 있을까?"로.
1796년, 낙농가 여성 사라 넬메스의 손에 우두 물집이 생겼어요.
제너는 그 물집에서 직접 고름을 뽑아 제임스의 팔에 주입했어요.
동네 할머니의 민간요법이 알고 보니 현대 의학의 출발점이었던 거예요.
당시 의학계는 학자의 이론과 민간의 경험을 철저히 구분했어요.
그래서 이 발견이 더 놀라운 이유는, 제너가 현장의 경험을 이론보다 먼저 믿었다는 점이에요.

제너의 가장 충실한 지지자는 영국의 적이었던 나폴레옹이에요.
1797년, 제너는 실험 결과를 정리해 왕립학회(Royal Society)에 논문을 제출했어요.
왕립학회는 당시 영국 최고의 과학자 집단이에요.
돌아온 답은 거절이었어요. "관찰 결과가 불충분하다."
제너는 포기하지 않고 1798년 자비를 들여 얇은 책을 펴냈어요.
제목은 『우두 원인과 효과 연구』예요.
그 책은 수년 만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어요.
그리고 1805년, 나폴레옹이 프랑스 군대 전체에 접종을 명령했어요.
심지어 제너의 편지 한 통에 영국군 포로 두 명을 석방해주기까지 했어요.
자국의 학회는 등을 돌렸는데, 적국의 황제가 후원자가 된 거예요.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져요. "제너가 요청한 것이라면 어떤 것도 거절할 수 없다."
오늘날로 치면, 네이처에서 거절당한 논문이 몇 년 뒤 WHO 표준이 된 셈이에요.

백신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마다 우리는 사실 젖소 한 마리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vaccine은 라틴어 vacca(암소)에서 온 말이에요.
소에서 얻은 물질로 만든 접종법이었으니, 이름이 거기서 온 거죠.
그런데 이 단어를 모든 예방접종에 쓰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제너가 아니에요.
1881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탄저균 실험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제너를 기리기 위해 모든 예방접종을 vaccination이라고 부릅시다."
파스퇴르는 세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예요.
그가 직접 제너의 이름을 이 단어 안에 새겨 넣은 거예요.
그래서 지금 mRNA 백신, 독감 백신, 코로나 백신까지 전부 이 한 단어 아래 묶여 있어요.
지난겨울 팔에 맞은 독감 주사와 1796년의 정원사 아들 제임스가 같은 계보 안에 있어요.
230년 전 글로스터셔 목장의 젖소 한 마리가, 지금 이 순간도 당신 팔 안에 살아 있는 거예요.
그 소의 이름이 우리 몸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 이상하지 않아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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