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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기원전 5세기, 압데라 시민들은 철학자 데모크리토스가 미쳤다고 확신했어요.
이유는 단 하나, 그가 매일 거리에서 혼자 소리 내어 웃었기 때문이에요.
압데라는 지금의 튀르키예 국경 근처에 있던 고대 그리스 도시예요.
지하철에서 혼자 계속 웃는 사람을 보면 우리도 먼저 '저 사람 괜찮은 건가' 의심하잖아요.
기원전 5세기 사람들도 정확히 같은 반응을 보였어요.
그런데 데모크리토스는 그냥 웃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만물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졌다는 원자론을 처음 주장한 학자였어요.
오늘날 물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원자 개념의 출발점이 바로 이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왜 웃었을까요.
데모크리토스 본인의 설명은 간단했어요.
"인간들은 돈, 권력, 명예 때문에 진지하게 싸우지만,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면 웃지 않을 수 없어요."
하지만 압데라 시민들에게 그 웃음은 어디까지나 병의 증거였어요.
그들은 결국 당대 최고의 의사를 불렀어요.
히포크라테스는 며칠 뒤 역으로 도시에 진단서를 썼어요.
미친 쪽은 웃는 철학자가 아니라, 그를 의심한 도시였다고요.
히포크라테스는 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이에요.
병을 신의 저주가 아닌 자연 현상으로 처음 설명하려 했고, 의사라는 직업의 윤리 기준을 세운 사람이에요.
압데라 시민들은 그에게 편지를 보내 데모크리토스를 진료해달라고 요청했어요.
전해지는 서한집에 따르면, 히포크라테스는 실제로 압데라를 방문해 며칠간 데모크리토스와 대화를 나눴어요.
결론은 충격적이었어요.
히포크라테스가 보기에 데모크리토스는 완전히 정상이었고, 오히려 그를 의뢰한 도시 전체가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회사에서 모두가 심각하게 싸우는 회의 중에 혼자 피식 웃는 동료, 그 사람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보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웃음이 무지의 증거가 아니라 통찰의 증거였던 거예요.
데모크리토스의 웃음은 결국 명예회복됐어요.
그런데 웃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웃다가 죽었다"는 표현은 비유가 아니에요.
기원전 3세기 철학자 크리시포스는 자기 농담에 스스로 웃다가 실제로 숨을 거뒀어요.
크리시포스는 아테네에서 활동한 스토아학파의 거장이에요.
스토아 철학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이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상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높은 덕이라는 관점이에요.
그 철학의 대가에게 어느 날 당나귀 한 마리가 무화과를 먹는 모습이 보였어요.
크리시포스는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그럼 당나귀한테 와인도 주지 그래."
자기 말이 너무 웃겨서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웃다가 숨이 막혀 그대로 사망했다고, 고대 철학자들의 전기를 기록한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남겼어요.
회식 자리에서 너무 웃다가 진짜로 숨이 막혀본 경험이 있다면, 크리시포스는 그걸 끝까지 간 거예요.
역사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어요.
감정을 다스리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라 가르쳤던 사람이, 웃음 하나를 다스리지 못해 죽었어요.
철학도 웃음 앞에서는 무력했어요.
1962년 탕가니카의 한 교실에서 시작된 웃음은 18개월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학교 14곳을 닫게 했어요.
탕가니카는 지금의 탄자니아 본토 지역이에요.
1962년 1월, 한 미션 기숙학교의 여학생 3명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웃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웃음은 멈추지 않았어요.
웃음은 빠르게 번졌어요.
같은 학교 95명에게, 이어 주변 마을 약 1000명에게까지 퍼졌어요.
수업이 불가능해진 학교들이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했어요.
의학계는 이 현상을 집단심인성 질환(MPI)으로 분류했어요.
MPI는 특정 신체 원인 없이 심리적 스트레스가 집단적으로 신체 증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SNS에서 밈이 순식간에 퍼지듯 감정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것과 비슷한 메커니즘이에요.
그런데 왜 하필 웃음이었을까요.
당시 탕가니카는 독립 직후의 극심한 사회 불안과 압박을 겪고 있었어요.
연구자들은 억눌린 긴장과 스트레스가 집단적으로 웃음이라는 형태로 터져나온 것으로 분석해요.
데모크리토스가 통찰의 웃음을 웃었다면, 탕가니카의 아이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을 웃음으로 쏟아낸 거예요.
웃음은 기쁨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것 앞에서 터지는 마지막 안전밸브이기도 해요.
2600년 동안 웃음은 철학자를 미쳤다 몰았고, 의사를 불렀고, 금욕의 현자를 죽게 했고, 학교를 닫게 했어요.
그렇다면 지금 이 글을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면, 그건 대체 무엇의 신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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