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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에서 20년을 살았지만, 끝내 아테네 시민이 될 수 없었어요.
17세에 고향 스타게이라를 떠나 아테네로 온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에 입학했어요.
플라톤이 세운 고대 아테네의 철학 학교로, 당시 지식인이라면 꼭 거쳐야 할 곳이었죠.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법적으로 메토이코이였어요.
메토이코이는 세금도 내고 군역도 지지만 시민권은 없는 거류 외국인 신분이에요.
오늘날로 치면, 대기업에서 20년을 일한 외국인 임원이 가장 유력한 후임 CEO감인데 국적 때문에 임원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상황과 같아요.
땅도 소유할 수 없었어요.
플라톤이 세상을 떠나자 아카데미 원장 자리가 비었어요.
누가 봐도 가장 뛰어난 제자는 아리스토텔레스였지만, 원장 자리는 플라톤의 조카 스페우시포스에게 돌아갔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짐을 싸서 아테네를 떠났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게 바친 가장 큰 존경은, 그를 반박하는 일이었어요.
플라톤의 핵심 이론은 이데아론이에요.
우리 눈에 보이는 사물은 모두 흐릿한 복사본이고, 진짜 완전한 원본은 눈에 보이지 않는 관념의 세계에 있다는 주장이에요.
눈앞의 사과는 가짜이고, '진짜 사과'는 저 하늘 어딘가에 있다는 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걸 완전히 뒤집었어요.
그는 자신의 책 『형이상학』에서 이렇게 말해요. "진리는 하늘에 있지 않아. 저 눈앞의 사과 안에 있어."
직접 관찰하고, 분류하고, 만져봐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격언이 생겼어요.
"플라톤은 친구지만, 진리는 더 큰 친구다."
20년 동안 가장 충실하게 스승을 따른 제자가, 스승 사상의 뿌리를 송두리째 뒤엎는 책을 쓴 거예요.
박사 과정 20년간 지도교수의 이론을 배운 제자가 첫 저서에서 그 이론의 핵심을 반박하는 것과 같아요.
배신이 아니라, 진지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플라톤도 그 점만큼은 인정했다고 전해져요.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13세부터 3년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직접 과외를 받았어요.
기원전 342년 무렵,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가 아리스토텔레스를 불렀어요.
왕자 알렉산더의 가정교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실이 숲속에 마련한 정원 학교 미에자에서 3년간 윤리학, 정치학, 생물학, 문학을 가르쳤어요.
알렉산더는 스승의 영향을 평생 간직했어요.
그는 전쟁터에도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들고 다녔고, 베개 밑에 두고 잤다고 전해져요.
그 책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직접 주석을 달아 선물한 흔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인이 아닌 민족은 본성상 지배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이에요.
그런 그가 훗날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정복하며 그리스 문명을 온 세상에 퍼뜨린 왕의 스승이 됐죠.
세계적 CEO의 10대 자녀에게 3년간 가르친 강사가, 그 제자가 글로벌 제국을 세우는 걸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상황이에요.
제자는 스승의 이론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꿔버렸어요.
두 사람이 이 아이러니를 서로 얼마나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처럼 죽기를 거부했어요.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바빌론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아테네에는 즉시 반마케도니아 감정이 폭발했어요.
알렉산더의 옛 스승이자 마케도니아와 가깝다고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는 곧바로 불경죄로 고발됐어요.
불경죄는 신과 도시를 모독했다는 죄목이에요.
70년 전, 소크라테스가 똑같은 죄목으로 고발돼 독배를 마셨어요.
소크라테스는 도망칠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 거부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달랐어요.
62세의 몸으로 짐을 싸서 아테네 북쪽 섬 에우보이아의 칼키스로 떠났어요.
배에 오르면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아테네가 철학에 대해 두 번째 죄를 짓지 않게 하겠다."
소크라테스와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철학적 계보에 있었어요.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의 스승이었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똑같은 상황에서 정반대의 선택을 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1년 뒤 칼키스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어요.
아테네로 끝내 돌아오지 못했어요.
평생을 바쳤지만 시민이 되지 못했던 그 도시, 그가 스스로 등을 돌린 그 도시로요.
소크라테스는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에 영웅이 됐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망쳤기 때문에 살아남았어요.
어느 쪽이 더 철학다운 선택이었는지, 답은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열려 있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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