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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093년, 잉글랜드 주교들은 한 수도사의 주먹을 억지로 펴서 그 안에 주교장을 쥐여줬어요.
그는 울고 있었어요.
캔터베리 대주교직은 당시 잉글랜드 교회의 최고위 자리예요.
오늘날로 치면 교황 바로 다음가는 위치라고 보면 돼요.
그 자리가 비었을 때, 모든 주교가 한 사람을 지목했어요.
그 사람은 안셀무스였어요.
그는 노르망디의 베크 수도원, 지금의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조용한 수도원에서 30년 넘게 기도하고 공부하던 수도사였어요.
권력은 그에게 재앙이었어요.
주교장은 대주교가 드는 지팡이로, 그 자리를 상징하는 물건이에요.
안셀무스는 그것을 받지 않으려 주먹을 꽉 쥐었어요.
하지만 결국 여러 주교들이 달라붙어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강제로 쥐여줬어요.
받기 싫어서 버티는 사람한테 억지로 상패를 안겨주는 시상식 같아요.
단지 이 상은 거절한다고 돌려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신 존재 증명은 강의실이 아니라 기도 자리에서 태어났어요.
대주교가 되기 15년 전, 베크 수도원의 안셀무스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단 하나의 논증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그는 밥을 먹다가도, 기도 중에도 이 질문을 놓지 못했어요.
몇 달이 지나도 답이 안 나왔어요.
거의 포기하려던 어느 새벽, 기도하던 중에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왔어요.
그는 바로 양피지를 꺼내 썼어요. 이것이 『프로슬로기온』이에요.
프로슬로기온은 라틴어로 '말 걸기'라는 뜻이에요.
신에게 직접 말을 거는 기도문 형식으로 쓴 책이에요.
그 안에 존재론적 증명, 그러니까 개념만으로 신의 존재를 추론하는 논리가 담겨 있어요.
논증은 이렇게 시작해요.
"신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는 존재야."
쉽게 말하면, 신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예요.
그런데 여기서 핵심 한 방이 나와요.
만약 신이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실제론 없다면, 실제로 존재하는 신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렇다면 애초에 신이 "상상 가능한 최대치"라는 정의에 모순이 생겨요.
그러므로 신은 반드시 실제로 존재해야 해요.
개념에서 존재를 끌어낸 거예요.
증거도 없고, 경험도 없이 오직 논리만으로요.
며칠 고민하던 문제가 잠들기 직전 침대에서 '아!'하며 풀리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아!'는 900년을 갔어요.
대주교 자리를 울며 거부한 남자는, 결국 그 자리 때문에 두 번이나 잉글랜드에서 쫓겨났어요.
대주교가 된 안셀무스는 얼마 못 가 윌리엄 2세, 일명 루퍼스 왕과 충돌했어요.
충돌의 핵심은 서임권이었어요.
서임권이란 '누가 주교를 임명하느냐'의 권한인데, 왕이 쥐면 교회가 왕의 부하 조직이 되고, 교회가 쥐면 왕도 교회 눈치를 봐야 해요.
1097년, 안셀무스는 결국 로마로 망명했어요.
왕이 죽고 귀국했지만, 이번엔 후계자 헨리 1세와 같은 문제로 맞섰어요.
그래서 1103년, 또 쫓겨났어요.
억지로 맡은 직책 때문에 상사와 두 번이나 대차게 싸워서 두 번 다 퇴사당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이라면 두 번째엔 그냥 왕의 편을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안셀무스는 버텼어요.
결국 헨리 1세가 한 발 물러서면서 협상이 타결됐어요.
안셀무스는 죽기 2년 전에야 겨우 귀국했어요.
왕도 두 번이나 꺾지 못한 수도사였어요.
안셀무스가 수도원에서 쓴 몇 쪽짜리 글은, 지금도 전 세계 철학과에서 학생들을 곤란하게 만들어요.
『프로슬로기온』의 핵심 논증은 2장부터 4장까지, 고작 몇 쪽이에요.
그런데 이 몇 쪽이 이후 철학사를 정면으로 분열시켰어요.
토마스 아퀴나스, 13세기 중세 신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철학자는 이 논증을 거부했어요.
데카르트는 17세기에 이 논증을 다시 꺼내 들었어요.
"생각하는 나는 존재한다"로 유명한 그 데카르트예요.
그는 신의 완전성 개념에서 존재를 끌어내는 방식으로 안셀무스의 논증을 부활시켰어요.
그러자 칸트가 나타났어요.
18세기 독일 철학자로, 인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킨 인물이에요.
그는 "존재는 서술어가 아니야"라는 한 문장으로 이 논증을 깼다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20세기 수학자 괴델은 양상논리로 이 논증을 다시 형식화했어요.
양상논리란 '가능하다', '반드시 그렇다' 같은 필연성과 가능성을 수학 기호로 다루는 논리 체계예요.
오늘날에도 플랜팅가 같은 현대 철학자들이 이 논증을 옹호해요.
일기장에 끄적인 몇 줄이 1000년 뒤 전 세계 대학 강의실의 교재가 된 거예요.
그것도 '이미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 '아직 논쟁 중인 문제'로요.
수도원에서 기도 중에 떠올린 아이디어가 왜 이렇게 오래가는 걸까요.
어쩌면 안셀무스는 신을 증명하려 한 게 아니라, 인간이 '상상 가능한 최대치'를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건드린 걸지도 몰라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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