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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시메옹 드니 푸아송이 수학자가 된 이유는 재능이 아니라, 첫 환자가 죽었기 때문이에요.
1796년 무렵, 열다섯 살의 푸아송은 외과의였던 삼촌 밑에서 의학 수습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손이 너무 떨려서 바늘을 제대로 쥘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퐁투아즈의 가난한 세무 행정가였고, 프랑스 혁명 직후 혼란스러운 시절에 가족 전체가 '의사 아들'에 희망을 걸고 있었어요.
그 소망이 얼마나 컸을지는 짐작이 가죠.
하지만 첫 번째 환자가 곧 세상을 떴고, 소년은 그날 이후 수술 도구 대신 수학 책을 집어 들었어요.
천재가 갑자기 각성해서 인생을 바꿨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한 환자의 죽음 앞에서 "나는 이 길이 아니구나"를 깨달은 것, 그게 전부예요.
유럽 수학계를 대표하게 될 인물의 출발점이 바로 그 떨리는 손이었어요.

칼을 못 쥔 소년은 분필을 쥐자마자 유럽 최고의 교실을 지배했어요.
1798년, 푸아송은 파리의 에콜 폴리테크니크에 입학했어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수준 높은 이공계 학교로, 나폴레옹 시대 프랑스의 엘리트를 길러내던 곳이에요.
그곳에서 라플라스와 라그랑주의 눈에 들었어요.
두 사람은 당대 프랑스 수학의 양대 거장으로, 지금으로 치면 필즈상 수상자 두 명이 동시에 "이 학생, 졸업하기 전에 쓰자"고 결정한 셈이에요.
결국 1802년, 만 21세의 시골 청년은 같은 학교의 교수가 됐어요.
재미있는 건, 그는 평생 실험 장비를 직접 다뤄본 적이 없었어요.
실험실이 아니라 종이 위에서만 세상을 이해하는 '순수 이론가'였고, 그걸 자랑스러워했어요.
그런 손으로 열전도, 전자기, 천체역학까지 전부 수식으로 정리하게 돼요.
푸아송은 자신이 역사에 남을 공식을 썼다는 사실을 죽을 때까지 몰랐어요.
1837년, 그는 『형사 및 민사 판결에 관한 확률 연구』라는 책을 냈어요.
프랑스 배심 재판에서 오판이 일어날 확률을 계산하는 책이었는데, 당시 배심원 제도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 거셌던 탓에 혹평만 받고 묻혔어요.
그 책 한가운데 어딘가에, 훗날 '푸아송 분포'라 불릴 공식이 조용히 끼어 있었어요.
시행 횟수는 아주 많지만 한 번 한 번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은 상황에서, 몇 번이나 발생할지를 예측하는 식이에요.
하루 동안 특정 교차로에서 사고가 몇 번 날까, 콜센터에 1분 동안 전화가 몇 통 올까, 이런 질문에 답해주는 공식이에요.
그런데 아무도 거기까지 읽지 않았어요.
회사 연말 보고서 부록 47페이지에 전 인류의 삶을 바꿀 아이디어 하나가 끼어 있는데, 아무도 거기까지 넘기지 않는 것처럼요.
그렇게 이 공식은 한 번 활자화되고 60년 가까이 잠들었어요.

푸아송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의 수식이 아니라, 말에 채여 죽은 프로이센 병사 196명이었어요.
1898년, 통계학자 라디슬라우스 보르트키에비치는 『소수의 법칙』이라는 책을 펴냈어요.
그는 프로이센 군대 10개 기병 군단의 20년치 보고서를 직접 뒤져서, 말발굽에 채여 사망한 병사 196명의 기록을 하나하나 모았어요.
연도별, 부대별로 정리한 사망자 분포는 놀랍도록 규칙적인 패턴을 보였어요.
그런데 그 패턴이 60년 전 푸아송이 써놓은 공식과 정확히 일치했어요.
수학자들은 그제야 먼지 쌓인 법정 연구서를 다시 펼쳤어요.
프랑스 법정의 오판 확률을 계산하려고 만든 공식이, 프로이센 군대 말발굽 사고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거예요.
하지만 푸아송은 1840년에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어요.
누군가 당신이 20년 전 쓴 메모를 꺼내 들고 "이게 맞았어요"라고 외치는데, 그 순간 당신이 자리에 없는 거예요.
오늘날 이 공식은 콜센터 대기 시간 계산, 교통사고 예측, 응급실 환자 수 추정, 스팸 메일 필터까지 쓰여요.
"드물지만 반복되는 사건"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푸아송의 이름이 따라붙어요.
의사가 되려다 실패한 소년의 손끝에서 나온 공식이, 이렇게까지 뻗어나갈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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