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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지금 동아시아가 읽는 장자는, 죽은 사람이 쓰다가 중단한 원고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3세기 중국, 향수(向秀)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는 죽림칠현의 한 명으로, 숲속에서 술을 마시며 세속을 거부하던 지식인 모임의 일원이었다.
향수는 말년에 장자 주석을 쓰다가 끝내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얼마 후, 곽상(郭象)이라는 인물이 장자 주석을 들고 나타났다.
진서(晉書), 즉 당시 왕조의 공식 역사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향수의 원고를 가져다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했으며, 곽상이 직접 추가한 것은 「추수」와 「지락」 두 편의 주석뿐이다."
친한 선배가 쓰다 만 논문 원고에 챕터 두 개를 덧붙여 자기 이름으로 출판한 것과 같다.
단, 그 논문이 이후 1700년 동안 동아시아 전체의 표준 교과서가 된 경우다.

곽상은 장자를 해설하면서, 장자가 평생 말해온 도(道)를 없애버렸다.
장자가 말한 도는 모든 것의 근원이자 흐름이었다.
쉽게 말하면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원리" 같은 것으로, 당시 철학자들은 이 도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를 놓고 경쟁하고 있었다.
곽상은 독화론(獨化論)을 내세웠다.
만물은 어떤 창조자도, 어떤 숨겨진 원인도 없이 그냥 각자 스스로 그렇게 될 뿐이라는 주장이다.
도라는 실체가 아예 없다는 뜻이었다.
당시 하안(何晏)과 왕필(王弼)이라는 철학자들은 귀무론(貴無論)을 주창하고 있었다.
"무(無), 즉 텅 빈 아무것도 없음이 만물의 근본이다"라는 학설이었다.
곽상은 그것마저 부정했다. "무(無)가 근본이라면 그 무도 뭔가인 셈이잖아."
성경 해설서를 쓴 사람이 "사실 신은 없습니다"라고 주장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장자의 주석자가 장자의 핵심 개념을 지워버린 셈이다.

장자는 재상 자리를 거절했다.
곽상은 장자를 주석하면서 그 자리를 받았다.
원전을 보면, 장자는 초(楚)나라 위왕이 재상 자리를 제안하자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사는 거북이 되겠습니다."
세속의 권력보다 자유로운 삶을 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런데 그 장자의 공식 해설자인 곽상은 서진(西晉) 말기에 사마월(司馬越)이라는 실권자 밑으로 들어갔다.
사마월은 황실 종친들끼리 권력을 놓고 싸웠던 '팔왕의 난'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곽상은 그 밑에서 태부주부(太傅主簿), 쉽게 말하면 재상의 비서장 역할을 맡아 국정 실권에 참여했다.
진서는 그를 "권세를 부리고 뇌물을 받았다"고 기록한다.
"워라밸"과 "퇴사의 철학"을 강연하는 유튜버가 새벽 2시까지 대기업 임원실에서 야근하는 모습과 같다.
그가 장자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살아있는 동안 내린 선택은 분명하다.

당신이 서점에서 집어든 장자는, 이미 곽상의 손을 거쳐 편집된 장자다.
표절 의혹은 기록 속에만 남았다.
당송(唐宋)을 거치면서 곽상주(郭象註)는 사실상 장자를 읽는 유일한 방법이 됐고, 다른 판본은 사라졌다.
더 결정적인 것은 편제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장자 33편의 구성, 즉 어떤 글이 장자이고 어떤 순서로 읽어야 하는가 자체가 곽상이 확정한 것이다.
원래 장자 텍스트는 52편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상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19편이 사라졌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출간되는 대부분의 장자 번역본은 곽상의 주석을 전제로 한다.
번역가의 해석이 너무 유명해져서 원작보다 그 번역본이 "진짜"로 기억된 상황과 같다.
원저자인지 표절자인지조차 불분명한 한 남자의 눈을 통해, 2천 년 동안의 독자들이 장자를 만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장자에서 감동받은 그 문장들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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