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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수학자 두 명이 10년을 바쳐 쓴 책이 있어요.
그 책, 1권의 379쪽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1+1=2라는 사실을 증명해냅니다.
이 책이 《프린키피아 마테마티카》예요.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 버트런드 러셀이 1910년부터 1913년에 걸쳐 펴낸 3권짜리 수학 기초 논저입니다.
두 사람의 꿈은 하나였어요. "수학의 모든 진리를 순수한 논리만으로 처음부터 쌓아올리자."
쉽게 말하면 이런 거예요.
사전 하나를 만드는데, 그 안의 모든 단어 뜻을 단 스물여섯 개 알파벳만으로 빈틈없이 설명하겠다는 꿈이에요.
그래서 '1+1=2'라는 당연한 사실도, "이게 왜 당연한지"를 기호와 논리로 379쪽에 걸쳐 처음부터 증명했어요.
그런데 20년 뒤, 균열이 생겼어요.
1931년 수학자 쿠르트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를 발표했거든요.
핵심만 요약하면 이래요. "아무리 정교한 논리 체계라도, 그 안에서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반드시 존재한다."
결국 두 사람이 10년을 들여 완성한 사전은, 세상의 모든 단어를 담을 수 없는 사전이었어요.
화이트헤드 인생의 첫 번째 균열이었습니다.

전사 통지서 한 장이 런던의 노교수 집으로 도착한 날, 그는 수학만으로는 아들의 죽음을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요.
1918년 3월, 화이트헤드의 막내아들 에릭이 전사했어요.
영국 왕립공군 조종사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에릭은 프랑스 상공에서 격추됐습니다.
향년 열아홉이었어요.
화이트헤드는 평생 논리와 기호로 세계를 설명해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그 논리가 닿지 않는 곳에 자신의 아들이 있었어요.
어떤 수식도 이 슬픔을 '증명'할 수 없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그의 관심이 달라지기 시작해요.
추상적인 기호 대신, '사건'과 '생성'이라는 개념으로 눈이 옮겨갑니다.
"세계는 고정된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되는 사건들의 흐름"이라는 생각이요.
아들의 죽음이 수학자를 철학자로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대부분의 교수가 은퇴 연금을 계산하는 나이에, 그는 대서양을 건너 철학자로 첫 봉급을 받았어요.
1924년,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응용수학 교수로 은퇴하던 그해에 하버드 철학과가 초빙 연락을 보내왔어요.
화이트헤드는 63세였어요.
수학과 물리학 경력만 있던 그가 '철학자'라는 직함을 처음으로 공식 얻은 게 바로 이때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취미로 철학을 한 게 아니에요.
정규직 철학과 교수로 새로 임용된 거예요.
하버드에 자리를 잡고, 그는 곧 자신의 대표작을 써냈어요.
《과정과 실재》는 1929년에 출간한 형이상학 저서로,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의 답은 단호했어요. 사물이 아니라 사건이라고요. 명사가 아닌 동사로 세계를 보자는 이야기예요.
30년 경력의 수학자가 완전히 새로운 분야에서 초심자로 다시 시작한 거예요.
63세에.

화이트헤드가 남긴 편지는 거의 없어요.
본인이 직접 다 태우게 했기 때문입니다.
1947년, 화이트헤드는 세상을 떠나기 전 아내 에벌린에게 지시를 남겼어요.
개인 편지, 노트, 미발표 원고 전부를 파기하라고요.
에벌린은 그 말을 그대로 실행했고, 지금 화이트헤드 아카이브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게 묘하게 역설적이에요.
그가 평생 가르친 핵심 사상은 "모든 실재는 생성 과정의 흔적"이라는 거거든요.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의 흔적은 철저히 지우기로 선택했어요.
버트런드 러셀, 하이데거, 비트겐슈타인은 방대한 유고집과 아카이브를 남겼어요.
그들의 메모 한 장 한 장이 연구자들의 손에 들어가 분석됐죠.
하지만 화이트헤드가 혼자 앉아 고민하던 순간들은 전부 연기가 됐어요.
어쩌면 그건 마지막 선언이었을 수도 있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말고, 내가 무엇을 말했는지를 보라"는.
아니면 그냥, 그런 종류의 후기가 자신에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 것이거나요.
우리는 이제 알 수 없어요.
그게 그의 의도이기도 했을 테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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